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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공동주택. 방(坊)
둥지방
2015. 3. 11. 16:56
신라시대의 공동주택. 방(坊)
1500년전 신라시대에도 공동주택이 있었다. 그것도 자연부락형태의 집단 거주지가 아니라 정밀하게 계획된 도시형태로 말이다. 1
998년 11월 경주 동천동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신라시대의 공동주택단지의 규모와 시설은 현대의 관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쾌적한 주거단지였다.
8,000평 규모의 장방형을 한 구획(이를 坊이라 하였다.)으로 하여 방과 방 사이에는 大路(폭 23m)를 두었고 대로을 연결하는 15m의 小路를 두었다.
각 도로는 자갈과 마사토 모래 등으로 잘 다져진 상태이며 도로마다 마차 전용도로와 인도가 좌우로 구분되었고 담장을 연하는 배수로로 구분되었다.
또한 각 방마다 53개의 공동우물이 일정간격으로 배열되었는가 하면 공동 화장실 및 숯 가마시설(당시 신라인은 숯으로 난방과 취사를 해결했다)도 구비되었다. 그리고 각방마다 150가구의 주택이 바둑판처럼 배치되어 ‘몇 번째 골목 몇 번째 집’하는 식으로 주소만 알면 집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였다.
오늘날의 평형의 차이가 있듯이 신분에 따라 집의 크기와 방의 규모도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방이 기록상 360개가 존재한 것으로 보아 신라 왕경 경주에는 500여개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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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주거단지라면 관리하는 관리소장도 있었을 법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