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生有擇과 생명사랑
생명의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생명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나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나 모두가 생명체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다른 種과의 생명이 부딪힌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속하지 아니한 종의 생명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모든 생명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취하기 마련이다. 곧 자연의 법칙인 먹이사슬이다.
먹이사슬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모순의 체계이다. 그러나 초식동물인 소가 풀을 먹는 것을 두고 누구도 생명을 앗아간다고 하지 않는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을 때 사슴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할지 모르나 사자는 당연한 행위이다. 이게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이다.
마찬가지로 잡식동물인 인간이 동식물을 먹는 것은 자연의 순리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생명에서 어느 것이 더 소중한 것이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생명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똑같이 소중하겠지만 인간의 입장에는 인간의 생명이 더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동물이 생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동물을 구해주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 차원에서 좋은 일임에 틀림없으나 그 동물을 구하기 위해 우리 인간의 생명을 담보한다면 이는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생명은 소중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생명이 속한 집단에 한정되며 다른 집단과 비교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등급이 있고 귀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관점에서‘생명의 소중함’은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만물의 영장격인 인간은 다른 생명과 달리 이성을 가졌기에(이 역시 인간의 편견일 수 있다.) ‘殺生有擇’이라는 좋은 말을 만들어 내었다. 즉 가려서 죽이라는 말이다.
내(인간) 생명과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한 나의 편익이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행위를 않는 것이 진정한 ‘殺生有擇’이며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