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삿갓(金笠)-피하기 어려운 꽃외 6수 모음
◐ 1.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 9.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 10. <젖 빠는 노래>
시아비는 그 위를 빨고 며느리는 그 아래를 빠네.
위와 아래가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둘을 빨고 며느리는 그 하나를 빠네.
하나와 둘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시아비는 그 단 곳을 빨고 며느리는 그 신 곳을 빠네.
달고 신 것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嚥乳章三章 연유장삼장>
父嚥其上 婦嚥其下
부연기상 부연기하
上下不同 其味卽同
상하부동 기미즉동
父嚥其二 婦嚥其一
부연기이 부연기일
一二不同 其味卽同
일이부동 기미즉동
父嚥其甘 婦嚥其酸
부연기감 부연기산
甘酸不同 其味卽同
감산부동 기미즉동
어느 선비의 집에 갔는데 그가 "우리 집 며느리가
유종(乳腫)으로 젖을 앓기 때문에
젖을 좀 빨아주어야 하겠소."라고 했다.
김삿갓이 망할 놈의 양반이 예의도 잘 지킨다고
분개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 11.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 12. <창>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窓 창>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 13.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름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 14. <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暗夜訪紅蓮 암야방홍련>
探香狂蝶半夜行 百花深處摠無情
탐향광접반야행 백화심처총무정
欲採紅蓮南浦去 洞庭秋波小舟驚
욕채홍련남포거 동정추파소주경
동정(洞庭)은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배경이 된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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