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일기 1
불효일기1(가출사건)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고등학교 입시시험을 치러야 하던 때이다. 나는 내 주제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소위 1류고인 K고에 가겠다고 뻣대었고, 해서 선생님의 완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학교에 지원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내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방임(?)하셨다.
어쩌면 당신들께서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있는 것으로 믿었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물론 낙방이었다. 그것도 형편없이 말이다. 나는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면서도 운이 없었다는 등의 핑계로 헛된 자존심, 아니 자만심만 살아서 재수해서라도 그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 부모님들은 재수는 안 된다 면서 (사실 당시 4형제가 줄줄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집형편으로는 내가 재수를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K고가 아니면 어떠냐 면서 2차 시험을 응시하도록 종용하셨다.
나는 내 실력(?)을 몰라주는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워 그때부터 모종의 음모(?)을 꾸몄다. 못 이기는 체하고 2차 시험에 응시하여 겨우 합격을 했다.
부모님들께서는 자랑스러워했으며 어렵게 등록금을 마련해주셨다. 당시는 그 등록금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학교에 등록하러 간다고 나와서는 그 길로 '청운의 꿈'(?)을 품고서 서울로 줄행랑쳤다. 물론 ' 독학을 해서 꼭 그 학교에 가겠다' 는 것과 '찾지 말아달라' 는 비장한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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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리 집에서 일어난 상황과 부모님들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나는 그러한 부모님의 심정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실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어림짐작뿐인 것이다.
아무튼 나는 청운의 큰 꿈을 가지고 서울로 갔건만 불과 열흘도 못되어 등록금을 다 까먹고 빌어 먹어야할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취직(?)을 한다면서 서울구경만 신나게 한 셈이었다. 이쯤 되니 청운의 꿈은커녕 후회와 걱정뿐이었는데, 마침 그 동안 내 행동을 눈여겨보았던 여관 주인(나이가 듬직하신 분이었는데 그 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이 경찰에 신고하였던 모양이다. 어느날 아버님께서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당신께서는 '고생이 많았제?' 면서 감싸주셨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어머니께서 식음전페하고 온 사방 찾으러 다니시며 울며 지새울 때 당신께서는 '돈 떨어지면 돌아온다' 고 태평스레 말씀하셨다지만, 3일전에 서울에 오셔서 나를 찾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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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온 나에게 아버님은 날벼락대신에 마음 정리 겸 쉬었다 공부하라면서 외가로 보내주셨다.
그후 공부한답시고 없는 형편에도 학원이나 독서실로 돌아다녔지만 두 번 공부한다해서 실력이 두 배로 느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내 능력의 한계가 그 것뿐임을 내가 왜 몰랐던가? 다음해 시험에도 역시 1차는 낙방, 2차에 겨우 합격했었다.
아마도 부모님을 속 태우게 한 因果應報(인과응보)였을 게다. 그
해 1차 시험에 낙방했을 때 약주 한잔 하신 아버님께서 실의에 찬 나를 안고서 '오늘의 실패가 네 인생의 실패는 아닌 게야' 하시며 눈믈을 지으셨다. 내가 한 말은 고작 '죄송합니다'는 말뿐이었다.
16살의 철없는 치기로 부모님께 일생 일대의 큰 불효를 저지르고도 아직도 그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어림짐작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나는 어쩔 수 없는 불효 막심한 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