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새겨 보는 우리역사, 우리문화

昔有桓國, 昔有桓因

둥지방 2015. 3. 9. 14:57

昔有桓國, 昔有桓因

 

우리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하는 근거가 삼국유사의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중략~ 開國號朝鮮. 與高同時.에서 찾고 있다.

즉 '위서'에 "2천년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했고 堯임금(高는 요임금의 이름)과 같은 시대였다." 요의 시대가 4300여년전이니까 반만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들은 ‘위서’가 현존하지 않음을 이유로, 그리고 호랑이와 곰의 내용이라든지 일연 스님의 불교적인 사관 <“昔有桓国(謂帝釋也”[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이는 帝釋이다.): 제석은 불교의 33天을 다스리는 가장 으뜸의 나라 忉利天이다.>을 왜곡하여 단군조선을 신화로 치부하며 우리 역사를 반토막으로 만들고 말았다.

여기서 잠시 삼국유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삼국유사'라는 제목은 일연스님이 붙인 것이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 무극이 1310년대에 책으로 간행했다. 이 때 간행한 책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으나 필사본과 재 간행 목판본, 영인본, 활자본 등을 통해 다양한 삼국유사 판본이 전해진다.

특히 1512년(조선 중종 7년) 경주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삼국유사는 中宗壬申本이라 불리며(명나라 무종의 연호인 正德을 사용하여 정덕본이라 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목판본이다.

그런데 이 壬申本 삼국유사 의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關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囯(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기록을 조선역사를 일본보다 못한 역사로 만들기에 고심하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 或云在開城東~~昔有桓因‘로 조작하였다.(1904년 동경제국대학에서 영인본 이름을 붙여 발간하여 각계에 배포함)

그는 일연의 ‘제석’이라는 註釋에 힌트를 얻어 환국의 자를 비슷한 자로 바꾸어 불교 경전에 나오는 신화의 의미로 둔갑시키면서 국가가 아닌 한 개인 (환인)의 家系(환인→환웅→단군)그것도 겨우 3대로 한정시켰다.

그리고 그는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 영역으로 축소하고자 흑룡강성의 하르빈 일대를 일컫는 ‘관성의 동쪽’(在關城東)을 중국 대륙에는 없는 ‘개성의 동쪽’(在開城東)으로 변조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16년 2개월 동안 조선사(朝鮮史) 편찬 업무에 관여하면서 단군고(檀君考)라는 단군 설화설을 만들어 고조선은 역사가 아닌 신화로 만들면서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반토막으로 잘라버렸다. <원문대로 해석하면 단군조선 이전에 환웅(배달조선)이 있으며, 환웅(배달조선)은 환국의 후계이다.

또한 홍익인간의 이념은 단군조선의 이념이 아니라 2대나 앞선 환국의 이념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따라서 단군조선의 개국이 4300년 전이라면 ‘환국’의 개국은 적어도 반만년을 훨씬 앞서는 시기가 되니 진정한 반만년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왜곡과 날조된 그 역사가 광복이 된지 70년이 되도록 아직도 학교에서 그대로 교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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