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류방택(柳方澤)
땅에 지도가 있다면 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가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별들에 인간세상의 흥망성쇠를 주관하는 하늘의 뜻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이미 5,000년전부터 천문대를 만들어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였고 별들의 지도인 천문도를 그리는 등 별들의 움직임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왔다.
덕수궁 석조 전 내 궁중 유물전시관에는 가로122cm, 세로221cm의 검은 대리석에 1.400여개의 별들을 새겨 놓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있다.
국보 제228호인 이 천문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남아있는 천문도 이후 우리 천문학의 역량과 성과를 결집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문도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긴 이름의 천문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양식으로서 천상을 커다란 원으로 표현해 이를 12개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列次)마다 그에 대응하는 지상의 12개 지역(分野) 명칭을 기록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한다. 76cm나 되는 원의 중심에는 북극성이 있고 원 둘레에는 옛사람들이 하늘을 나누는 기본 틀로 설정했던 28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이 천문도는 중국의 남송 순우(淳祐)천문도(1247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石刻) 천문도이지만, 이것의 원형이 되는 천문도는 이미 고구려시대때 사용되던 것으로 그것이 전란등으로 대동강에 수장된 것으로 전해진 천문도의 탁본(이성계가 보관)을 근거로 새 왕조 창업의 권위 상징으로 태조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동강의 수장된 천문도를 발견한다면 아마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천문도를 만든 민족일 것이다.
이처럼 귀한 가치를 지닌 천문도가 조선이 망하면서 창경궁 정원 풀속에 방치된 채 관람객의 식탁으로 사용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제 강점기 때 평양 숭실 학교에서 근무(1910-1930)했던 미국인 천문학자 WC 루퍼스의 『동양의 천문관이 집약된 섬세하고도 정확한 천문도』라고 격찬한 「한국 천문학」이란 책 때문에 재평가되어 결국은 국보로 지정되게 되었다.
이 천문도를 만들 때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 고려시대의 천문학자인 류방택이다.
그는 탁본과 현시점에서 700년이라는 시차에서 생길 수 있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탁본 천문도를 기준삼아 별을 새로 관측하는 등의 노력으로 중국 것과는 다른 매우 정확한 천문도를 만들어 우리의 천문학 수준이 세계적인 경지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고려의 신하였던 류방택은 새 왕조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조정에 나서기를 거절하다가 주변의 간곡한 권고로 천문학자로서의 소임을 다한 후 개국일등공신의 봉작을 거절한 채 서산에 낙향하였다.
그가 우리나라의 천문관측史적으로 지대한 공로가 있었기에 그를 기리고자 그의 고향인 서산에는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을 건립하여 운영중에 있으며. 또한 1만원권 지폐뒷면에 천상열차분열지도를 밑그림으로 넣어 그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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