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묘미를 찾는 짦은 얘기(꽁트)

공소시효

둥지방 2016. 4. 24. 23:53

공소시효

최종 감정가 3억원으로 평가되었다.

안교수는 깜짝 놀랐다. 수 천만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까지 되리라고는 생각 못한 것이다.

“정말 稀貴本으로서 조선 초기의 인쇄술이나 書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임은 물론 문화재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책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실 이 책은 15년 전에 분실되었던 것인데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것 만으로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하겠습니다.”

‘분실’이라는 감정위원의 말에 안교수는 잠시 흠칫하였으나 감정가가 표시되는 순간 온몸으로 전달된 그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귀중하고 값진 자료를 넘겨준 그 친구가 세삼 고맙기까지 했다.

10여년전 자주 가는 고서점의 주인이 연구실로 찾아와서 책을 내 놓았다. 오랫동안 왕래를 하다 보니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오래전부터 소장하던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올라가는 것이지만 돈이 궁하여 급하게 내놓았다면서 이왕이면 책의 임자를 제대로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찾아왔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서지학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공부하는 역사학과 관련된 서적을 수집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던 그였지만 부르는 가격이 몇 달치 월급인지라 오랜 망설임 끝에 구입하고 말았다. 10년 후면 억대의 가치가 있을 거라면서 10년동안 세상에 알리지 않는게 좋겠다는 친구의 말에 정상적인 유통과정이 아닌 것으로 짐작은 하였으나 古書에 대한 욕심이 많은 그로서는 귀중 한 책인 만큼 두고두고 소장할 요량으로 친구의 말을 수락했다.

그 책을 애지중지 보관하면서 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항상 궁금하게 여기던 차 지난해 퇴임과 더불어 연구실 書架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던지라 해수를 헤아려 보니 10년이 훨씬 넘었다. 이제는 세상에 내어놓아도 될 것 같아 TV의 ‘진품명품’프로에 출연한 것이다.

소감을 묻는 진행자의 말에 그저 어떨떨 하다면서 ‘나도 학자로서 이제부터 이 책에 대한 자료적 가치에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고 했다.

TV가 방영되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비롯하여 책에 대한 문의전화를 받았다. 게중에는 매도 의향을 묻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집 가보로 간직토록 하겠다’며 단호히 거절하곤 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 책은 자신들의 문중에서 대대로 전승되던 것이었는데 도난당한 것이라며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가 왔다.

그 편지를 받고서 너무도 당황스러워 그 친구를 닦달해본즉 도난품인 것이 맞았다. 처음부터 합법적인 거래가 아니었기에 다소 문제가 있는 것임을 짐작은 했으나 도난품인 것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결국 臟物을 소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도난품이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지만 그 친구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15년을 기다린 것이지요, 내가 5년 당신이 10여년, 합하면 15년이 넘고, 강탈죄의 공소시효 15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공소시효란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안도의 숨을 쉬고는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없다’는 답장을 보냈다. 물론 ‘공소시효’라는 법적 용어를 언급하면서 말이다.

며칠이 지났다.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연구실에 형사 두 사람이 방문하였다.

그들은 체포영장을 보여주며 경찰서로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도난당한 문화재임을 알고서도 장물 취득 및 은닉한 혐의였다.

안교수가 15년 공소시효 등을 운운하며 영장집행을 거부하였으나, 原 소장자의 편지 및 고서점상을 통해 도난 문화재임을 인지하였으며, 은닉죄는 은닉상태가 종료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계속적으로 발효되는 것이라는 형사의 친절한 설명에 은닉죄의 공소시효가 따로 있는 줄 모른 그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2016.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