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시계, 해시계는 세종때?
우리는 흔히 해시계와 물시계는 세종대왕 때 발명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세종 때 그것들이 발명되었다면 그 전에는 어떻게 시간을 측정했을까?
사실 해시계, 물시계는 이미 삼국시대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 17년(718년) 물시계를 만들고 瘺刻典을 설치하여 박사 6인, 史 1인을 두었다고 했다. 박사란 물시계를 만드는 일에서 그것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일과 그 이론적인 문제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휘감독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문적인 관리를 둘 정도의 기구를 두었다면 시간측정에 대한 이론적 기술적인 수준이 상당했을 것이다.
백제는 554년 일본에 역박사를 파견하였고 그 후 일본에도 물시계가 제작되었고 이를 관리하는 전담기구와 누각박사, 曆博士등의 제도가 생긴 점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물시계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한나라 때 발명된 浮瘺라는 물시계를 개량하여 사용하다가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처 조선 세종 때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술인 自動時報 장치를 한 自擊漏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발명에 가까운 초정밀 물 시계였다.
자격루발명전에는 시간을 알리는 전담 관리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지켜보다가 때마다 시각을 알리도록 하였으며 그들이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 자칫 졸기라도 하여 시간을 놓치면 큰 소동이 나기가 일수였다. 그 때문에 관리들이 처벌을 받은 기록들이 많이 나타나곤 하였다. 아마도 자동시보장치가 붙은 시계는 당시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장 영실이었다.
해시계는 물시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시계는 야간은 물론 기상의 조건에 따라 사용할 수없는 것이므로 그 보완적인 시계가 물시계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해시계인 仰釜日晷는 우매한 백성을 위한 公衆의 시계로 삼고자 시간마다 글자대신 그에 해당하는 짐승을 그려 넣어 혜정교와 종묘남쪽에 설치하였다.
앙부일귀는 그 정밀성은 중국의 것을 능가했을 뿐아니라 서양의 시계탑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하겠다.
그 후 앙부일귀는 점차 보급되면서 명문대가집 마당에도 설치되었으며 소매에 넣고 다니며 시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던 것이다.
길가던 선비가 소매자락에서 앙증맞은 앙부일귀를 꺼내어 시간을 보던 그 모습이 요즘 손목시계를 보는 우리들 보다 더 멋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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