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로켓, 走火
1380년 진포(오늘날 군산)에 왜구 5만명(배 1척당 100명 승선 기준)이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저장하는 조창을 공격하기 위해 500척의 배를 이끌고 침입하였다. 이에 맞선 고려군은 100척의 배에 1만명의 이었으나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태우고 왜구를 섬멸하였다.
고려사에서는 이 전투상황을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배에 있던 왜구는 모두 불에 타 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고려군이 대승한 진포해전이다.
1/5의 적은 병력으로 대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군이 화포와 走火라는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최무선이 중국에 이어 독자적으로 화약을 발명하였고 그 화약을 응용하여 많은 무기를 만들었다.
화포는 요즘의 대포이며 주화는 로켓이다.
주화는 화약을 태워 생기는 추진력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이는 현대의 로켓원리와 동일한 것이다. 활처럼 시위를 당길 필요없이 화약통에서 화약을 태우면 굉음과 함께 발사되며 화살보다 사거리가 배 이상(300m 정도) 되어 기존의 근접전을 탈피하여 원거리 작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려사』에서는 ‘주화를 쏘면 그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자는 모두 항복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주화가 발전하여 조선 초기에 神機箭으로 나타난다. 신기전은 로켓의 단계에서 미사일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즉 화약의 힘으로 주화보다 5배이상 비행할 뿐 아니라 목표물에서 화약이 터지도록 하여 그 파괴력을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화차라는 발사대를 이용하여 100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어 그 위력은 정말 가공할 만 하였을 것이다.
『국조오례서례』에 의하면 주화나 신기전의 제조 및 설계과정의 정밀성과 정교함은 오늘날의 기술력과 조금도 손색이 없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의 하나인 행주산성 전투에서는 왜군 사상자만 1만여 명, 노획무기 720여 점 등 왜군에게 회복불능의 타격을 준 대첩이었다. 3만여 명의 왜군에 맞서 겨우 2300명의 소수 병력(그나마 정규군은 2000명도 안되었다.)으로 대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신기전을 비롯한 조선의 뛰어난 화약무기가 총 동원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00발의 신기전을 동시에 발사하는 『火車』의 역할은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의 승리는 내가 화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우리 선조들이 개발한 뛰어난 무기인 신기전이나 화차 등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켰더라면 일제에 의한 망국이 비운도 없었을 것이고, 미국의 핵우산을 빌리지 않고도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 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되 새겨 보는 우리역사, 우리문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시계, 해시계는 세종때? (0) | 2015.03.25 |
---|---|
일본의 구석기 유물 조작사건 (0) | 2015.03.25 |
궁녀는 전문직 국가공무원 (0) | 2015.03.25 |
鮑石亭? 砲石祠? (0) | 2015.03.25 |
하이테크 진수 팔만대정경 (0) | 2015.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