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묘미를 찾는 짦은 얘기(꽁트)

세사람의 유월

둥지방 2015. 6. 4. 16:27

세사람의 6월

 

  1. 손 여사의 눈물뿐인 6월

손여사는 남편과 자식을 앗아간 저들에게 사과한마디 받지 못하면서 화해만 말하는 높은 분의 추념사에 서운함을 가지면서 남편의 묘지부터 찾았다.

『고 육군 대령 유 종근의 묘』

손여사는 두 번 절을 하고는 쓰러지듯 주저앉아 통곡했다. 1년에 몇 차례 오는 곳이긴 하지만 올 때마다 슬픔이 북 받혔다.

기구한 운명과 더불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한스러웠기 때문이다.

피난길에 북괴군의 공습에 의식을 잃었다 깨어보니 군 병원이었다. 남편은 이미 죽었고 아이는 행방불명이었다. 아이를 찾고자 유리걸식 하듯 하면서 이곳저곳 헤매어보았지만 아이는 없었다. 급기야 산다는 의미가 상실되어 인생을 포기하고자 했을 즈음 한 남자를 만났다. 그도 북에서 단신으로 내려온 외로운 사람이었다.

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그와 보금자리를 틀면서 자식까지 얻어 그야 말로 행복이라는 것을 새롭게 만끽하였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남편은 월남전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두 남편을 여인 박복한 여자. 게다가 다 키운 자식마저 놈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나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들을 33년만에 찾게 되어 반쪽의 한은 풀어졌다만. 

"여보, 나도 이제 당신 곁에 갈 때가 머지않은 것 같구려. 당신도 나처럼 늙은이가 되었수?"

그러나 손여사의 눈에는 혈기왕성하고 늠름한 청년의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한 순간 또 한사람의 젊은 얼굴이 중첩되며 나타났다. 첫 남편의 모습이었다.

'당신의 아들, 아니 우리 아들이 사단장이 되었다오. 기쁘지요' 속내로 말하면서 손여사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옮겼다.

김상사가 이미 분향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 육군 대위 유 기민의 묘』

손여사는 비석을 어루만지며 소리내어 울었다,

"이놈아 에미 왔다. 이 불효자식! 그동안 아버지를 잘 모셨느냐?"

  손여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비석을 어루만지기만 했다. 또다시 그때가 회상되었다.

기민이의 등에 업혀 춤을 추며 좋아했는데 갑자기 자신이 한 애기를 업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잃었던 아이였다. 이를 본 기민이는 손뼉 치며 좋아라 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꿈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기민이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엊그제만 해도 전역식 때 꼭 와야 한다는 신신당부의 말이 있었는데, 뿐만 아니라 큰 선물을 있다 해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을 잃고 오로지 그 녀석에게만 희망을 걸고 모든 고생을 낙으로 삼으며 살았는데, 아버지 없이 자랐어도 기죽지 않고 말썽 한번 피운 적 없이 그렇게 훌륭히 자란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네 형이 오지 못했구나. 하지만 네 형이 사단장이 되었단다. 그것도 네가 근무하던 부대에 말이다.’

"김 상사 저 녀석도 형이 사단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까?"

"알구 말구요. 소대장님께서도 사단장님의 부임을 축하하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원수를 갚고 통일을 이룩하길 바랄 겁니다."

"아무렴, 아무렴, 그놈은 정말 용감히 싸우다 죽었겠지?"

이미 전부터 몇 번인가 물어본 얘기이다.

"그럼요. 제가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그럴꺼야. 제 아비를 그대로 닮았었지"

손여사는 손수건으로 다시 눈물을 훔쳤다.

 

2. 김상사의 피 빛 6월

김 상사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나쁜 놈의 새끼들! 김상사는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었다.

이미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때의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당시 소대 선임 분대장으로서 5일 후 전역을 앞둔 소대장의 업무 인수인계 준비에 바빴는데, 갑자기 전통이 날아왔다.

 '무장공비 출현! α작전 수행' 소대는 작계대로 즉각 출동했다. 분대별로 수색 및 정찰 그리고 매복작전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틀째 마침내 적과 조우하게 되었다.

무장공비는 최초 3명 이였으나 2명은 이미 사살되었고 1명만이 부상당한 채로 도주 중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군의 피해도 만만찮았다.

도주하던 놈은 지쳤는지 계곡을 등진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은신 중이었다.

소대는 그 주위를 포위하고는 상부 지시에 따라 투항을 권유하였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생명을 보장하겠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너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뚜루룩! 소대장의 투항권유에 놈은 사격으로 대답했다.

"더 이상 헛된 죽음을 자초하지 말라! 투항하라! 우리는 너를 같은 동포로서 생각하고 있다."

  "개수작 말라우야!"

놈은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상당시간 숨 막히는 대치가 있은 후 소대는 상부로부터 사살명령을 받고서 포위망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때 놈이 투항을 표시했다. 소총을 버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외쳐댔다.

"부상이 심해 움직일 수 없으니 치료 해주시기요."

"좋다. 움직이지 말고 손을 들고 있으라! 곧 가겠다."

  김하사는 위생병과 더불어 소대장을 근접 수행하면서 조심스레 접근하였다. 얼만큼 접근했을까? 실로 눈 깜짝 할 사이였다.

"갓나 새끼들!"

놈은 앙칼진 그 말과 함께 수류탄을 던진 것이다. 모두들 순간적으로 피하면서 엎드리긴 했지만 굉음과 함께 유독 소대장만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 놈을 집중사격으로 사살하고는 소대장을 응급처치 하였으나 출혈이 너무 심했다.

"김하사 이걸 대대장님께..."

소대장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주머니용 비망록이었다.

  '나쁜 놈들! 놈들에게는 포용이 필요 없어! 베풀수록 얕잡아 보고 속이려 들고 대드는 놈들이야!'

 

  3. 사단장의 한스런 6월

사단장은 GP장이 브리핑을 끝내자 전방을 주시하며 상념에 잡혔다. 유중위가 근무하던 GP다.

이 지역이라면 아직도 어느 모퉁이에 어떤 돌이 있고 풀이 있는 것을 알 정도로 훤하다. 소대장에서 대대장, 사단참모에 이르기 까지 10여년이상 근무했던 곳이다. 또한 사랑하는 부하를 잃은 곳이기도 했고, 동생이라 불러보지도 못한 동생을 잃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찾은 곳이기도 했다.

  ‘기민아-! 유 중위-!’

그는 속으로 동생을, 부하를 크게 불러보았다.

'이 녀석아, 내가 왔다. 형이 왔단 말이야! 네 원한을 풀기 위해 이곳에 왔어. 자식, 형인 줄 알았으면 진작 형이라고 불러볼 것이지, 그래 너는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고는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린거야?'

처음 어머니께 인사드리던 날은 유중위의 장례식을 끝낸 날이었다. 어머니께 사진 두 장을 보여드리며 울먹이며 '어머니' 라고 불렀을 때 당신께서는 반신반의하셨다. 그러다가 유중위의 비망록을 보시고는 그만 대성통곡을 하시며 자신을 얼싸안았다.

"종기야! 네가 종기란 말이야? 어디 보자 내 새끼. 네가 정녕 종기란 말이지. 이 에미를 용서해라! 종기야! 종기야!"

“어머니!”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말이었던가? 고아원을 전전하며 부모 있는 아이들만 보면 부러운 나머지 괜스레 심술을 부려 싸움질하기도 했다.

죽은 피난민 틈에 울고 있는 아이를 국군이 거두어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 아이의 품에는 첫돌기념 가족사진 한 장이 있었다.

그 아이는 그 사진을 부적처럼 간직하면서 언젠가 부모님이 찾아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희망은 적개심으로 변하면서 부모님을 죽게 한 공산당을 쳐부수겠다고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군에서 젊음을 불사르면서도 행여나 하는 생각에 부모님을 찾아보고자 했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최일선 GOP 경계부대 책임자로 있던 몸인지라 방송국의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되었지만, 다시 만난 어머니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함께 흘리곤 하셨다.

‘이 모든 게 분단의 비극이지, 아니 저놈들 때문이지. 저놈들을 이길 수 있는 강한 부대를 만들어야 해.’

사단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GP장!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뜬금없는 사단장의 질문에 GP장은 잠시 머뭇거렸다.

"남북화해도 좋지만 우리의 적은 분명히 저곳에 있는 공산당 놈들이야. 북한 우리 동포를 수탈하고 있는 공산당 놈들이 우리의 적인 거야. 아니 우리 인류의 적이지, 그놈들은 급하면 공산주의를 포기한다는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 거야, 결코 믿어서는 안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사단장은 GP장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 한 곳을 폈다. 사진이 끼여 있던 곳이다.

「84. 6. 15 이는 천우신조이다. 대대장님 사무실에 있는 사진이 낮이 익어 혹시나 했는데, 어머님이 보내신 사진과 일치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분이 바로 내가 존경하는 대대장님이다. 대대장님은 이제 나의 형님인 것이다. 나에게도 형님이 있다. 어머님께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아마 믿기 어려우실 테지. 전역기념으로 어머님께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다. 대대장님, 전역과 동시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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