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역사를 쓰고자 하는 사람의 공통된 話頭이다. 소위 말하는 史觀이다. 바른 사관이란 과거 동양의 春秋筆法에 의한 褒貶(포폄)으로부터 서양의 考證을중시하는 實證史觀에 이르기까지 객관성과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 시대의 사건이나 유물 및 기록물(史料)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또한 어떠한 평가를 할 것 인가 그리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의 행위주체는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완벽한 객관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인간이다.(물론 이것이 인간자체가 불행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행복일 수 있다.) 제아무리 올바른 잣대를 가졌다 할지라도 주관적인 면은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건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순간부터 이미 주관이 개입되는 판국에 하물며 10년 100년 1000년 이후라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때문에 先史時代의 유물을 제외한 이세상의 모든 기록물 즉 역사는 크든 작든 事實 또는 진실과는 歪曲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날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 구석기 유적 조작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2000년 11월고학자 후지무라가 가짜 유물을 파묻는 장면이 마이니찌 신문기자에게 포착되어 그동안 일본의 구석기시대를 터무니없이 조작한 것이 밝혀져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사건임>
하지만 그 같은 날조나 왜곡을 가려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그 것만으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혹자는 자신만이 시비곡절을 가릴 수 있다고 접근하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이념에 의해 또 다른 왜곡을 범하는 自家撞着의 獨善에 빠질 수 있다.
19세기 말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본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15000년 전의 사람들이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발견자의 조작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자신의 지식 한계로 인한 자만심이 낳은 편견이었음이 프랑스 남서부와 피레네 산맥의 동굴에서 유사한 구석기시대의 벽화가 발견되면서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15000년전의 그 시대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生存에 급급한 무지 몽매한 원시인들의 삶이 아니라 색감이나 질감, 그리고 입체감까지 표현할 정도의 발달된 문화와 문명이 존재했음을 인정하여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영원한 숙제일 테지만 소위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를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잣대로만 본다면 과거의 역사는 모두 否定될 수 있는 함정이 있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모든 역사는 ‘전체주의’나 ‘독재주의’ ‘권위주의’ 등의 부정적인 면만 보일 것이며, 과학발달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현재의 눈으로 본다면 지난 역사는 무지의 역사요, 빈곤의 역사로 顚落된다.
‘진실’이나 ‘정의’만을 주장하다보면 과거의 모든 것은 ‘거짓’과 ‘不義’로만 치부될 수 있다.
Hegel이 인류 역사는 ‘正(These), 反(Antithese), 合(Synthese)’의 유기적인 반복변화로 발전하고 있으며 시대마다 그 시대의 ‘시대적 이념(정신)’이 있다고 했듯이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무시 또는 否定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제없는 오늘이 없듯이 현재가 역사발전의 결과이자 과정으로 생각할 때만이 E.H.Car가 말한 진정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즉 ‘歷史’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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