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는 당시 교황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온 기술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때 교황의 사절단과 얘기했는데, 그 사절단은 한국을 방문하고 여러 가지 인쇄기술 기록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친구였다. 이 사실은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혁명은 역사적으로 두 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전 세계가 한국으로부터 인쇄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 미국 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 고어가 2005년 5월 19일 「서울 디지털 포럼 2005」에서 한 말이다.
교황사절단이 15세기에 조선에 온 사실을 문헌 상 확인이 되지 않고 또한 스위스 인쇄박물관의 기록을 확인할 수 없기에 그 진위여부는 좀 더 확인해야할 것 같지만 엘 고어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5세기에 명나라에 교황사절단이 갔던 것은 분명하며 그 사절단 중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이미 12세기부터 조선으로부터 일어난 인쇄혁명의 기술을 수집하여 구텐베르크에게 전달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스위스 인쇄박물관의 기록에 ‘조선’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더라도 ‘동방’이니 ‘제후국’ ‘속국’등의 표기는 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쇄술을 가진 나라는 조선밖에 없었으니 인쇄에 관한 한 ‘중국’ 또는 ‘명’이라는 표기가 아닌 지역이나 국가는 조선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실 유럽이 우리 인쇄기술의 영향을 받았음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발견된 후부터는 유럽의 학자들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우리의 인쇄술이 중국 원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원, 명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의 「라이프」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을 꼽으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지식정보혁명을 가져왔고 소수의 전유물이던 책이 대량 생산됨으로 사회 문화 전반에 대 변혁을 일으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라 했다.
이처럼 인류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쇄술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며 이것이 서양으로 전해진 인류 최대의 문명교류의 한 과정으로 또 다른 ‘실크로드’ 즉 ‘활자로드’인 셈이다.
엘 고어가 ‘학국의 디지털 혁명은 전 세계가 한국으로부터 인쇄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한 것처럼 우리나라가 IT 디지털 산업 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세계최초 그리고 최고의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그 인쇄술을 가졌던 우리 민족의 DNA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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