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새겨 보는 우리역사, 우리문화

춘추필법을 아는가?

둥지방 2016. 5. 24. 23:15

春秋筆法

 

춘추는 공자가 쓴 魯나라의 역사이다.

춘추의 서술방법은 중국의 사서편찬의 기준이 되었는바 소위 춘추필법이다.

‘역사를 정확히 기록한다’는 뜻으로 유학자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이것은 실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中華主義에 입각한 필법(史觀)으로서 그 원칙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爲國諱恥이다.

나라를 위해 부끄러운 것은 피한다(기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春秋穀梁傳(곡량전)에 나오는 ‘존귀한 사람을 위해 부끄러운 것은 기록하지 않고~’(爲尊者諱恥~ )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尊(사람)대신 國(나라)자로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영광스런 일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일은 슬쩍 감추는 기법이며 수법이다.

둘째 尊華攘夷이다.

이는 春秋公羊傳에 尊王攘夷(양이) 즉 왕실(주나라를 의미)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에 근거를 둔 것으로 尊王을 尊華로 바꿔 漢族의 위상을 높이는 대신 주변나라는 깍아 내리는 것이다.

셋째 詳內略外이다.

후한말기 徐幹(서간)의 저작 中論에 ‘공자가 춘추를 지으면서 안(중국)을 상세히 하고 밖(오랑캐)을 간략히 하며~(孔子之制 ’春秋‘也 詳內而略外~)에서 나온 말이다.

즉 그들의 역사는 상세히 서술하지만 이민족역사는 간략하게 적거나 생략하는 필법이다.

 위의 원칙에 의해 역사를 기록하다 보니 많은 사서들이 我田引水 격이거나 왜곡 날조된 것이 많다. 해서 그들의 기록들을 다각도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소위 ‘춘추필법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근세 역사학자 梁啓超가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목적을 위한 秋草의 노릇을 할 뿐이다.

그 결과 억지로 중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위조하여 사가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

이 악습은 공자의 수법에 나와 2천년동안 그 악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을까?

물론 어느 나라이든 자국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국의 관점에서 유리한 쪽으로 기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大義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표방한 것이 춘추필법인 것이다.

문제는 춘추필법에 꿰맞춘 그 사관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며 더 심각한 것은 그에 附和雷同하는 학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점이다.

여왕 때문에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고,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事大를 하는 변방국인 우리가 황제를 칭하거나 독자적 年號를 사용함은 중국에 대한 不敬이며 無禮라며 우리역사를 貶毁(폄훼)한 김 부식 같은 위인은 제쳐 두더라도, 우리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고 있는 ‘동북공정’에 맞서기는커녕 일조하고 있는 主流講壇의 우리 역사학자님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