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새겨 보는 우리역사, 우리문화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난방 ‘온돌’

둥지방 2015. 3. 25. 10:45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난방 ‘온돌’

 

아마 30대이하의 세대에서는 ‘온돌’ 또는 ‘구둘’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것이다. 설사 알고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사라진 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2000년이상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고유한 난방방식이며 아직도 매우 유용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고고학 또는 역사학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분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온돌이다. 온돌이 있는 지역은 우리 민족이 생활 또는 활동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구당서(舊唐書)에 온돌이 고구려인의 독특한 난방방식임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로 과거 고구려강역을 비롯한 한반도에서만 온돌이 사용되었다.

물론 로마시대 때 하이퍼코스터Hypocaust라는 온수공급을 위한 온돌이 있었으나 그마저 로마가 멸망하면서 사라졌다.

우리의 이 온돌방식 때문에 2005년 8월 러시아 연해주지역의 크라스키노 성에서 많은 유물, 유적이 발견되었고 그 유적이 곧 1300연전 발해의 성읍인 것으로 입증시킨 결정적인 유물가운데 하나가 바로 완벽한 채로 발견된 온돌이었던 것이다.

발해가 고구려의 뒤를 이은 우리민족의 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중의 하나가 바로 온돌이었던 셈이다.

소위 동북공정으로 발해를 그들의 변방역사로 만들고자 획책하는 중국이 공개하지 않는 발해지역(현재의 북경일대를 포함)을 발굴해본다면 거기에도 분명 온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등 따시고 배부르다’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 민족은 등이 따뜻해야만 된다. 등 따시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온돌만한 게 더 있을까? 그 온돌의 변형이 오늘 날 우리 주택의 난방구조이다. 즉 온돌의 구둘장 대신 방바닥에 깔린 난방용 배관이다. 그게 엑셀이든 동관이든 말이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도입될 무렵에는 선망의 대상이던 아파트가 서구식 난방방식을 하다보니 우리 체질에 맞지 않아 대중화가 되지 못하고 주한 미군들이나 침대생활에 익숙한 특수 계층만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60년대 중반 방바닥을 데우는 난방법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급속도로 보급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등 따시고~~’ 라는 온돌의 개념에서 출발되었던 오늘의 난방방식은 개량을 거듭하며 많은 발전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효율성을 인정받아 많은 나라에서 밴치마케팅을 하고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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