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왕국 한반도
3000여 년 전의 무덤양식으로 알려진 고인돌. 이 땅의 선조들은 3만5천여기의 고인돌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 숫자는 전 세계의 고인돌 수의 40%에 이른다. 놀랍지 아니 한가?
지구의 땅덩어리 중 한 반도는 한 점에 불과한 넓이에서 이처럼 많은 고인돌이 집중되어있는 것에 전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경이로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주로 서해안 일대에 분포하면서 고창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 2만여기, 북한의 평양지역의 1만여기, 그 외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일대에 수십기씩 밀집되어있다.
고창의 매산마을 산기슭에는 무려 442기(미확인 된 것 포함한다면 1000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됨)가 밀집되어있다.
고인돌은 흔히 족장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돌의 위용과 그것을 축조하는데 들인 노력을 감안한다면 그 만한 권력을 쥔 사람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1998년 10월 고창군 고인돌 축제에서 매산마을의 제일 큰 고인돌의 1/10 규모(9.8톤의 덮개돌)의 고인돌을 전문가의 고증으로 축조과정을 재현해 본 결과 85명의 인력이 통나무 등 원시적이 도구를 이용하여 꼬박 하루 정도 걸렸다.
이를 토대로 무게가 무려 97.3톤에 이른 고인돌을 채석하고 현장까지 옮겨 축조하기까지는 최소한 800여명이 동원되어야한다는 뜻이며 이는 그 마을에 어린이 노약자까지 합한다면 2000명이 살았다는 셈이다.
장례가 있으면 그 마을인구의 전체가 동원되는 대 役事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족장급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반도에 밀집한 고인돌이 모두가 족장의 무덤일까?
무덤이라면 유골이나 부장품등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한 흔적이 없는 고인돌이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는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이 없는 고인돌, 그리고 돌에 구멍이 있거나, 그림도 새겨져있는 걸 보아 고인돌은 단순히 무덤이 아니라 암석(거석) 신앙의 대상인 祭壇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인류고고학적으로 보면 큰 돌에 대해 경외심을 표하는 거석기 문화시대가 있는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선돌과 고인돌이다.
선돌은 자연석 돌을 그냥 세워둔 것으로 프랑스 카르나크지방의 3000여개의 선돌이 열을 지어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인돌은 선돌의 형태에서 발전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고인돌 역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던 단조로움에 벗어나 인위적인 멋이나 위엄을 갖추는 것으로 변형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과정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의 형태 즉 남방식, 북방식, 그리고 혼합식 등의 모든 형태가 우리나라의 고인돌에 다 나타나고 있어 인류고고학적으로 당시 한반도 지역은 많은 종족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교류, 정착하는 등 매우 역동적인 삶을 영위한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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