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생활글)

우리집 괘종시계

둥지방 2017. 10. 14. 06:16

우리집 괘종시계

 

우리 집에는 괘종시계가 있다. 건전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태엽을 감는 전통 괘종시계이다. 선친께서 내가 중학교 합격기념으로 사온 것이니까 55년이 넘은 시계이지만 아직도 잘 가고 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야 하고 수시로 시계추의 길이도 조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구시대 유물 같지만 그 시계를 볼 때 마다 정겹다. 특히 매 시간마다 울리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종소리는 정감을 불러온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면 누구나 오래된 시계에 대해 놀라고 은은한 종소리에 감탄을 한다.

아버님께서 처음 시계를 사왔을 때 우리 집은 잔치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시계는 귀했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큰 부자의 상징이었고 벽시계라도 있는 집은 먹고살만한 집이었다.

시계 없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상상이 잘 안 되는 전설속의 세월 같지 만, 시간을 물으러 옆집에 간다던지, 오후반 수업(그 당시에는 오전반 오후반이 있었다.)에 늦장부리다 학교에 가니 마지막 수업시간이기도 했고, 그 반대로 너무 일찍 가서 몇 시간 운동장에서 놀기도 했다.

이런 형편에 아버지께서 사오 신 시계는 우리 집 보물단지였고 우리 가족들의 생활을 변모시켰다. 일어나면 아침이고 배가 고프면 점심때이고 해가지면 저녁때라는 시간의 개념에서 한 시간 두 시간의 시간 개념으로 바뀌었다. 나도 처음으로 일과시간표를 짜보았다. 물론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긴 하지만,

그러다 보니 시계는 우리의 가족이 되어버렸다. 한 달에 한 번씩 정성껏 밥을 줘야하고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정도는 불알을 조절해주는 등 애지중지하였다. 처음엔 아버님께서 그 일을 하셨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내 몫이었다.

어쩌다 시계가 멈추는 날이면 온 집안이 난리였다. 밥을 제때 주지 못했다고 꾸중을 듣는 것은 물론이요 옆집에 가거나 심지어 한 참 걸어 파출소에 가서 시간을 물어야 되었다. 이런 소동은 훗날 라디오가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해소되었고 더불어 시계의 존재가치도 많이 퇴색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온 집안을 들썩이며 요란하게 울려대는 탁상시계 자명종이 보급되더니 이어서 손목시계가 대 유행이었다.

일본산 조립품인 시티즌이나 세이코는 당시 고등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째깍째깍 돌아가는 초침이 달린 시계는 당시로는 최첨단의 시계였다. 그 시계보다 더 좋은 시계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버지를 졸라 시계를 차게 되었을 때 온 천하가 내 것인 양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누구 시계가 더 정확한지 내기를 하는 가하면 시계유리판이 크리스털인지 확인하기 위해 못이나 돌조각으로 서로 긁어보기도 하고 방수가 잘되는지 물속에 넣어보기도 했다.

자동(밧데리 없이 흔들면 진자에 의해 동작된다.)이니 수동이니 하면서 좋고 나쁨을 따지다 전자시계(디지털)가 나타나자 아날로그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벽시계도 시대에 따라 쿼츠디지털이니 하면서 1년에 몇 초의 오차가 생길정도의 정확한 시계가 등장하면서 태엽을 감거나 추가 있는 시계는 사라졌다. 간혹 추가 있는 시계가 있어 반가워 가까이서 보면 시계바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추여서 실망하기도 한다.

가격도 싸다보니 방마다 시계를 걸어두지만 골동품이 다 된 그 시계는 거실 벽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똑딱 똑딱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몇 십년동안 잘 가던 시계가 언제부터였는지 12자와 6자를 기점으로 5,6분정도 빠르거나 늦어지는 것이다.

 시간마다 알니는  종소리는 항상 분침이 5자를 넘어서 울리고 힘겹게 정각에 오른 분침은 일순간에 힘없이 툭 떨어져 5자을 넘어있다.

가끔 집에 온 손주 녀석들은 그게 신기한지 분침이 12자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툭 떨어지는 것을 보며 깔깔된다.

이를 고쳐보고자 교동의 시계방 골목을 찾았더니 고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대부분이 시계를 보는 순간 아예 고칠 수 없다고 손 사례를 쳤지만 나이 지긋한 한 분께서는 부품을 구할 수 없어 고칠 수 없으니 그냥 쓰라는 것이다. 앞으로 50년은 더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골동품 같은 가치가 있으니 오래 간직하라는 것이다.

겉을 닦기만 하면 반들반들 윤기가 나서 조금도 헌 것 같은 느낌이 없는지라 시계라는 의미 보다는 그림액자와 더불어 멋진 장식품으로서 거실 벽을 차지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똑딱똑딱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러워 굳이 정확한 시간을 맞추고자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 밥을 제때 못줘서 멈추기라도 한다면 미안하다며 얼른 밥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동안 고생하였으니 좀 쉬라면서 태엽을 감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똑딱거리는 추의 소리, 댕댕하는 은은한 종소리가 귓전에 맴돌기에 하루를 못 참고 태엽을 감기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난 시계는 우리 가족들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이 있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함께하면서 우리 집의 역사를 품고서 앞으로의 세월을 이어주고자 똑딱거리고 댕댕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