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4.19. 49주년.
내가 초등하교 3,4학년 시절. 영화 ‘이승만’을 보면서 박수를 쳐댔고, ‘우리 대통령 이승만’이란 노래를 열심히 배웠다.
독재나 민주주의가 뭔지, 자유당, 민주당이 뭔지 모르던 우리들에게 언제 부터였는지 새로운 노래가 유행하였다.
『가련다 떠나련다 海公선생 뒤를 따라 中略, ~ 자유당에 꽃이 피고 민주당엔 눈이 내리네. 』
가수 박 재홍씨의 有情千里를 改詞한 유행가였다. 그 노래를 부르면 순사에게 잡혀간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 이유도 모른 채 재미삼아 흥얼대었는데...
어느 날인가 고등학생 형들이 데모를 하다가 많이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위 2.28의거였다.
수성천변에 개최되는 야당의 선거유세에 참가하는 것을 막기위해 일요일임에도 학교에 등교시킨 것에 반발하여 경북고, 대구고 학생들이 경북 도청까지 反獨裁를 외치며 시위를 한 것이다. 이 渦中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경찰곤봉에 터지거나 연행되어 고초를 당했다.
이것이 신문에 大書特筆되고 이를 契機로 3월 중순 마산상고학생들의 蹶起와 뒤이어 당시 실종되었던 김주열학생의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신이 4월 10일 발견됨으로서 4.19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처럼 4.19의 시발점인 2.28이 4.19의 그늘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 그것도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일어난 고등학생들의 정의감 發露에서 일어난 의거임에도 말이다.
4.19가 한창 진행될 무렵 선생님들이 단식투쟁에 돌입하고(무슨 연유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선생님이 수업 중 쓰러졌다는 소문에 초등학생들도 ‘쓰러지는 우리 선생님을 구하자’며 스크럼을 짜고서 교문을 拍車고 나오기도 했다.
오늘이 49주년되는 4.19혁명 기념일인지라 그 시절을 回顧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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