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생활글)

辯士영화관 , 시민회관

둥지방 2015. 3. 24. 17:39

辯士영화관 , 시민회관

 

<어사또 이몽룡은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라는 시를 지어 바치고는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금동이의 맛있는 술은 만백성의 피요,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

암행어사 출도야!> 비장한 어조로 말하는 辯士의 말에 내가 이몽룡이라도 된 듯이 박수를 보내며 한 장면 한 장면에 가슴을 조이며, 눈물도 찔끔, 콧물도 훌쩍이던 시절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아니다. 오늘날의 시민회관이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육군 중앙극장’이라는 이름으로 無聲映畵를 상영하던 곳이다.(사실은 무성영화가 아니라 talkie시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회관은 日帝때는 미나까이, 무영당이라는 백화점 또는 호텔로, 광복후는 公會堂, KBS 방송국으로, 그리고 6.25당시 육군본부가 대구에 위치하면서 군인들의 휴식공간인 군인 극장으로 활용되었다.(오늘날 시민회관은 1974년 지어진 것이다.)

....

아버지를 따라 처음 가본 영화관이 바로 군인극장이다. 그전에는 마당에 포장을 친 가설극장에서 가마니 위에서 쪼그려 앉아 한 두 번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극장에서 의자에 앉아 편안히 영화를 보긴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영화에 푹 빠져, 아버지를 졸라대거나, 아니면 용돈(?) - 사실은 각종 명목의 삥땅이다. - 을 아껴 10리길 마다않고 친구들과 三三五五 들락거렸다.

어쩌다 아이스케키라도 하나 먹을 수 있는 날이면 삥땅친 것이 탄로나 아버지로부터 볼기짝을 맞더라도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서부영화의 gunman들이 쏘아대는 총소리, 말달리는 소리마저도 변사의 솜씨에 따라 관객들은 울기도, 웃기도하였다.

가끔은 영화 장면과 변사의 말이 일치 되지 않아

‘집어쳐라!’는 야유에 ‘재미없으면 가라!’는 대꾸로 더욱 관객을 웃기기도 했다. (일반 영화관에서는 外畵가 우리말로 더빙되어 상영되었다.)

덕분에 케리쿠퍼가 名射手니 아란낫드가 速射手니 하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으시댈 수 있었고, 전쟁영화를 보면서 ‘영웅’에 대한 환상도 가져보았고, 도 금봉의 유관순 누나의 ‘대한독립만세!’ 를 외치며 獄死하는 장면에서는 엉엉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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