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생활글)

케네디와 WASP

둥지방 2015. 3. 24. 21:59

케네디와 WASP

 

 엊그제 존 에프 케네디대통령의 막내 동생인 에드워드 게네디 미 상원의원이 타계했다.

그가 죽음으로서 미국 정계에 50여년 동안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한 케네디家의 명맥이 끊긴 셈이다.

케네디家는19C 아일렌드에서 이주하여 2대째인 Joseph P. Kennedy에 이르러 성공한 사업가와 정치가로서 명문가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아들 존, 로버트, 에드워드 등 명망의 정치가를 배출하였으나 장남인 Joseph P.1세, 장녀인 케슬린, 존, 로버트, 등의 9명의 자녀 중 6명이, 그리고 손자 존 2세(존의 장남) 등이 非命橫死하여 소위‘케네디가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에드워드 역시 여 비서의 의문의 죽음으로 그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케네디가가 명문가가 되기까지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로 미국 주류 계급, 백인이면서 영국계의 개신교 집단)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다.

WASP는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소위 명문학교(Ivy League 등)를 거치며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상류층의 배타적인 집단이다.

백인이지만 순수 영국계가 아니면서 개신교도 아닌 케네디형제가 정치명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가 되어야한다는 아버지의 교훈에 따라 무수한 노력의 결과이긴 하지만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더욱 명실상부한 명문가가 되었다.

존이 wASP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대통령이 된 것은 TV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당시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TV대담에서 경쟁자였던 닉슨은 분장을 하지 않고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촌 사람 같은 이미지를 주었으나 케네디는 배우를 뺨칠 정도의 멋진 분장으로 여성들이 오줌을 저릴 정도로 열광했었다. 이는 TV의 속성을 잘 아는 신문기자 출신인 부인 재키의 역할도 컸다한다,)

그 후 레이건(캐돌릭)의 등장과 최근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됨으로서 WASP의 영향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대를 이은 부시가문과 같이 여전히 WASP는 미국의 power elite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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