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bus Day’와 신대륙 미국
엊그제(10.12)가 미국의 개천절이라 할 수 있는 Columbus Day다.
1492년 8월 3일 에스파냐(지금의 스페인)여왕 이사벨라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한 산타마리아 호를 비롯한 3척의 배는 고난의 항해속에 69일만에 육지에 닿았으니, 콜럼버스는 그 기쁨에 못이겨 ‘산 살바도르’ (San Salvador.성스런 구세주)라 외치고 그곳의 지명으로 이름 붙였다.
콜럼부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생각하고 그곳 원주민 7명을 데리고 귀환하여 여왕에게 보고하기를 ‘수많은 종류의 과실이 열린 평원과 넓은 벌판, 주민들은 애정이 풍부하고 욕심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인도란 당시 사람들에게 황금으로 가득 찬 꿈의 나라였다. 웬만한 모험가라면 누구나 인도에 가서 일확천금을 하고 싶어 했으며 많은 국가들도 인도로 가고 싶어 했으나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동 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을 점령하여 동방으로 가는 육로와 수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무역로의 필요성에 의해 각국에서는 경쟁적으로 신항로개척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대였다.(에스파냐는 서쪽항로, 포루투칼은 동쪽항로를 택했다.)
이런 차제에 인도항로를 개척했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기뻐서 다음해에 콜럼부스에게 17척의 배와 1,500명의 선원을 주어 그 지역을 개척토록 하였고 콜롬부스는 그곳에 요새를 쌓고 실질적인 정복사업을 시작했다.
3년에 걸친 정복사업결과 금광 채굴과 면화재배에 원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어 원주민 1/3이상이 죽거나 에스파냐 노예로 팔려갔다.
그후 콜럼부스는 두 번 더(1498년,1502년) 서인도제도로 건너가 베네주엘라, 온두라스 지방까지 탐험을 하였지만 죽을 때까지 그곳이 인도라고 믿었기에 그 일대를 서인도제도,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던 것이다.(그곳이 인도가 아님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밝혀졌으며 1507년 독일의 지리학자 M.발트제뮐러의 世界誌入門에 아메리카라는 명칭으로 신대륙이라 불려짐)
그로부터 120년후 1,620년 종교의 탄압이 없는 신천지 개척을 목적으로 102명의 청교도(Puritan)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2월 21일 메사추세스 주의 플리머스(그들이 떠나온 모국의 항구의 이름이다.)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미국역사가 시작된다.
청교도 및 프론티어(frontier)정신에 의한 그들의 신천지 개척과 신세계건설은 결과적으로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목숨을 앗아 가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대신하여 주인 노릇하는 모양이 되었지만 콜럼부스의 서인도제도 상륙과 더불어 시작된 ‘신세계’는 미국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세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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