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의 역사기행3
단군 조선의 글 『가림토문자 (古篆)』
“동궁, 이것을 보아라 숙주가 가져온 서책들인데 인도 일본에서도 고자와 비슷한 글자가 있구나 , 그리고 음운체계도 비슷하고”
“아바마마 범옹이 또 큰일을 했나 보옵니다.”
이두(吏讀)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몽골어, 여진어에 능통하고, 인도어와 아라비아 문자까지 터득하고 있는 천재언어학자인 범옹이 부왕의 명을 받아 자료수집을 위해 중국 일본 등 각지에 수차례 왕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자는 대왕이 넘겨준 자료를 일변하였다.
“하오면 단군세기에 나온 가림토문자가 실제 있었다는 뜻이 아니온지요? 단군세기 자체를 믿을 수 없었는데”
“그렇지. 돌아가신 태종께서 서운관에 보관된 많은 史書들을 공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하여 소각할 때 별도로 챙겨둔 것인데, 이게 입증될 줄이야....암튼 이미 3,700여년전에 우리 선조들은 고유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다만 그 쓰임새를 알 수 없어 안타깝기 짝이 없어~”
“아바마마, 이 글자에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 글자를 토대로 하여 연구를 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나도 그 생각이다. 이 동그라미『ㅇ』는 뭣을 의미할까? 『ㅁ』,『ㅣ』. 『ㅡ』 는? “
“아바마마, 『ㅁ』 는 혹시 입 모양을 표시한 게 아닐런지요?”
“입모양이라? 그래 그거다. 우리 몸의 발성기관을 살펴봐야겠다. 동궁은 발성기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보아라!”
.....
“음, 가림토 문자라? 단군세기에 기록된 모양인데 아우는 단군세기란 책을 들어봤는가?”
“들어보긴 했지만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고려말기 이암(李嵓)이 쓴 걸로 압니다만..”
“그래? 암튼 그 책을 읽어 봄세.”
세 사람은 얼른 집현전 서고에 소장된 ‘단군세기’책속에 들어갔다.
“동생, 얼른 보니 단군이 마흔일곱 분 계셨네? 단군왕검 한분만 계신 줄 알았지, 그것도 1900여년 간 살다가 신선이 된 전설상의 인물로만 알았는데,”
“저도 말만 들었지, 이렇게 자세한 이름까지는 몰랐습니다. 단군이나 고조선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연구가 덜 된 탓인지 공인된 사실이 아니다보니 교과서 등에 전혀 언급이 없는 걸요.”
“연구가 덜 된게 아니라 안 한거 아닌가? 아님 그릇되게 알고 있거나....어쨌든 여기 가륵단군조에 가림토문자가 있구먼, 형씨께서 읽어보실까?”
중국인 친구가 또박또박 읽었다.
『更子二年 時俗 尙不一 方言 相殊 雖有象形表意之眞書 十家之邑 語多不通 百里之國 字難相解 於是 命 三郞 乙普勒 찬 正音 三十八字 是爲加臨土 其文 曰
“경자2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 표의문자인 진서가 있어도 열가구의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거나 백리가 되는 나라에서는 글자가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 38자를 짓게하니 이가 가림토이다. 글자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경자년이면 경자년이지 경자2년은 무슨 말이지요?”
중국인 친구가 자기가 읽은 것을 이해하지 못해 묻는다.
“그러고 보니 그렇구먼, 경자2년이라, 혹시 ‘경자’가 세종이니 세조니 하는 시호 같은 걸까?”
“다른 단군에도 같이 쓴걸 보아 문맥상으로 가륵단군 재위 2년이 경자년이라는 뜻입니다.”
“역시 아우가 제일이야~ 가세나~”
.......
“이 보시게, 아우. 여기가 고조선시대 맞는가? 고조선시대라면 아직 국가체제도 제대로 못 갖춘 나라로서 사람들이 풀로서 몸을 가리고 살던 미개한 시대가 아닌가?”
“저도 어리둥절합니다. 여기가 4,300년전의 시대가 맞는 건가요?”
단군께서 거주하시는 왕경(여기 사람들은 아사달이라 부르고 있다.)이긴 하지만, 우람한 궁궐은 물론이요 나들이 나온 백성들의 의상마저 다채롭다. 삼베나 모직 또는 가죽으로 심지어는 비단으로 세련되게 가꿔 입고서 어떤 이는 옥으로 또 다른 이는 청동으로 단추 등 장식을 달고 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바지에 저고리를 입었으나 여자는 바지위에 가벼운 치마를 걸쳤다.
남자들은 상투를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길게 머리를 땋거나 말총처럼 묶었다. 여자들의 머리에는 하나같이 고운 비단헝겊으로 만든 댕기(단기: 檀旂)를 달고 있다.
‘역시 우리 민족은 상투가 상징인 모양이야. 댕기머리가 이때도 있었네? 단순히 멋으로 단건 아닌 것 같은데...’
“여기가 그 평양일대 왕검성인가 보지요?”
“형씨 무슨 소리요? 여기가 평양이라니?”
아우가 조금은 날카롭게 대꾸한 것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배웠지요,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라고, 저기 강이 대동강일 것이고...”
그런가? 나 역시 그렇게 믿어야 할 판이다.
“이 보시오, 대동강이라면 서쪽으로 흘러야하는데 저 강은 동남쪽으로 흐르고 있잖소?”
“아~ 그렇군요, 그럼 평양이 아니면 어디일까?”
“저 사람들이 송화강 운운하는 걸 보니 저 강이 송화강인 모양일세, 가만있자 송화강이라면 만주지역과 러시아 국경쪽이 아닌가?”
갑자기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이 생각났다.
‘이곳이 하얼빈? 하얼빈이 고조선의 수도였단 말인가?’
“그렇지 여기가 오늘날의 하얼빈이야,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이곳을 고조선의 최초의 도읍지임을 比定하셨지, 그분의 주장이 옳았어!”
“동생, 여기가 하얼빈이 맞어? 고조선의 수도는 평양이라고 배웠는데...”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고 또한 그렇게 가르쳐왔지요, 하지만 단재 선생께서는 한반도를 비롯하여 북만주 일대와 요서의 북경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고조선이 실재했음을 주장하셨지요. 그 땅이 너무나 넓어 3개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 배웠고 잘못 가르친 것 같습니다.”
“허~ 이런 사실을 잘못 가르치다니... 연구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 아님 연구를 하지 않아서인가? 우리는 그동안 엉터리 역사를 배웠구먼, 이제부터라도 후세들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되어야 할 텐데...”
“둘 다이겠지요, 문헌이 부족하다 던지, 고증자료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문헌이 왜 없어? 단군세기는 문헌이 아니고 뭔가?”
“강단의 역사학자들은 단군세기를 검증이 안 되는 僞書로 보고 있으니까요?”
“위서? 아니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이 단군세기의 기록을 찾아 온 것인데... 그러면 가림토문자를 확인해보면 확실 하겠구먼”
가륵단군께서 삼신 상제님을 수호하고 제천의식을 주관하는 삼랑 을보륵을 기다리며 회상에 잠겼다.
조부 단군왕검께서 부족들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운지 150여년. 왕검께서는 九桓族을 하나로 통일하시고 천하를 三韓으로 나누어 환웅성조의 가르침대로 덕성과 성서러움으로 치산치수하시어 백성을 다스리시니 태평성대를 이루셨다. 왕검께서 御天하시니 만백성들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모여앉아 단기(댕기)를 받들며 경배하였다.
“오라, 댕기가 단군왕검께서 돌아가신 것을 애도하는 표시였구먼”
뒤를 이은 부루단군께서는 부왕의 뜻을 받들어 도량형을 통일하고 七回歷과 井田法으로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시니 단군께서 붕어하시자 백성들은 목놓아 통곡하며 하늘에는 일식이 덮치고 산에서는 뭇 짐승들이 울부짖었다. 백성들은 집집마다 제사를 지낼 때면 단군님을 기리고자 곡식을 담은 항아리를 제단에 모시고 「부루단지라」 부르며 業神으로 삼고 있다.
선대의 위업을 받들어 나라는 부강하고 만백성은 고복격양(鼓腹擊壤)할 수 있는 치세를 만들고자 勞心焦思하고있으나 미흡한 것이 많아 늘 걱정이 앞서나 선대의 총신이자 상재님의 수호자인 삼랑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그나마 안심이 된다.
‘공께서도 알다싶이 우리나라가 남북 2만리 동서 5만리에 여러 부족이 있다 보니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라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자로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신시 배달국 때부터 내려오는 「녹도(鹿圖)」 「용서(龍書)」 「우서(雨書)」 「화서(花書)」를 비롯하여 가까이로는 왕검천자께서 만드신 「신전(神篆)」등의 문자가 있으나 어려워 백성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모양이외다.
해서 공께서 보다 쉬운 글자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통일된 문자를 보급함이 어떨까 하오만...‘
1여년이 지난 오늘, 삼랑이 새로 만든 문자를 보고하러 온다는 것이다.
삼랑공은 오른손을 외손에 포개어 공손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머리를 세 번 여섯 번 아홉 번 조아리는 三六大禮후 엎드려 말했다.
“신 을보륵은 삼가 천자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폐하! 天子!?, 천자는 우리나라 황제에게만 사용하던 존칭인데~”
중국 친구가 발끈하며 내 뱄듯 한다.
“이보시게, 여기는 4,300년전의 조선일세, 저분들의 말씀을 들어 봄세”
.....
“어서 오시오~ 공께서 새로운 문자를 만들고자 불철주야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익히 들은 바 있소!”
“망극하옵니다. 신은 다만 御心을 받들고 자 했을 뿐 이옵니다~”
“감읍할 뿐이오, 공께서 만드신 글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보시지요”
“폐하, 사람들이 글을 만들게 됨은 말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방편과 다른 사람 또는 후세에 전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동물이나 사물의 모형을 본뜬 그림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달코자 했으나 사람들 마다 그 표현 방법이 달라 서로 통하기가 불편하였습니다. 이때 배달국 환웅천제께서는 신지에게 명하시어 이 땅의 백성들에게 상제님의 뜻을 베풀고 밝혀줄 수 있는 문자를 만들도록 하였고 후에도 태호복희씨나 치우천황때도 글자를 만들었으나 대체적으로 뜻을 전하는(표의)문자인지라 일반 백성들에게는 어려워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습니다.
차제에 臣은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를 만들어 누구라도 쉽게 글을 익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상제님이 現神하신 하늘, 땅, 사람의 三神을 조화시켜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입모양이나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 홀소리 닿소리로 만들었습니다.”
“오 그래요! 상제님의 뜻도 반영되었다니 정말 훌륭한 글이외다.”
삼랑공은 도표를 펼치고서 글자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이 글은 우리 조선국의 正音으로 사용할 것이며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어 상제님의 혜택을 두루 받게 하는 글자라는 뜻으로 ‘加臨土’ 문자라 하시오”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시대 계속 사용되다가 녹도문과 갑골문에서 출발한 한자가 진화되고 점차 문자가 귀족 등 지배층들의 통치수단 및 전유물이 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인도, 몽골 일본 등 일부 지역에만 변용 사용되고 있었다.
“동생, 단군조선이 이렇게 강대한 국가인 줄 몰랐네, 우리가 알던 삼한이 단군왕검께서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한 삼한관경제(三韓菅境制)에서 나온 것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못했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한반도의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과는 그 개념이 전혀 다르군요”
온 김에 走馬看山격으로 단군조선을 둘러보았다. 그 와중에 중국인 친구는 중화의 변방 속국으로만 알고 있던 조선이 이처럼 강대할 뿐 아니라 성군으로 떠받드는 요, 순을 비롯한 夏, 殷, 周,가 조선의 제후국으로 된 것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투덜대었다.
“동생, 가림토문자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한 만큼 이제 대왕께서 이를 어떻게 활용했느냐가 문제일세”
“글쎄요, 이미 수 천 년이 지난 세월인지라 그 원리가 제대로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
“공주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자는 누이인 정의공주에게 물었다. 어릴 때부터 총기가 있어 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부왕의 문자창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발성기관으로부터 소리가 나는 만큼 발성기관을 연구해봄이 지당할 것입니다. 소리모양을 발성기관에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소리모양? 소리를 모양으로 만든다?”
“소리 모양이 곧 글자 모양이 되겠지요.”
“아바마마 소리모양과 글자모양을 같이 생각해보자는 공주의 생각이 재미있습니다.”
두 오누이간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대왕은 무릎을 쳤다.
“그렇다. 발성기관에서 찾아보자, 발성기관이라면 목, 혀, 입술, 코, 이빨 등이 있겠다. 우선 목부터 살펴보자. 목에서 나는 소리가 어떤 것이 있나 소리를 내어보아라.”
“아~~, 오~~, 우~~. 으~~, 어~~,”
“이번엔 짧게 소리내어보아라”
“아, 오, 우, 으, 어”
세자와 공주는 반복하여 소리를 내었고 대왕은 목안을 유심히 살폈다.
“음 목구멍이 둥글게 열리는 구나, 그러면 우선 동그라미를 글자로 만들어 보자, ‘ㅇ’그렇지 가림토문에도 있었지”
대왕은 단군세기에서 필사한 가림토문자를 훑어보고는 ‘ㅇ’을 표기했다.
“이번엔 이빨에서 나는 소리를 내어보아라”
“스, 즈, 츠”
“가만있자, 세 가지 소리가 같은 이빨 모양이 같은데 소리는 다르게 나지?”
“아바마마 ‘스’에서 ‘즈’나 ‘츠’는 혓바닥에 힘을 주며 이빨을 막아 주니까 그렇게 소리납니다.”
대왕도 스 즈 츠를 반복해보았다,
“옳거니, 이빨 사이의 모양이 가림토문자의 ‘∧’와 닮았구먼, 그리고 힘을 주니까 소리가 드세어지니 위쪽에 획 하나씩 넣으면 되겠구먼, 그렇지 ‘ㅈ’‘ㅊ’ 모양이 있네, 다음으로 입술소리를 내어 보자구나”
“므, 브, 프, 쁘,” “머, 버, 퍼, 뻐” “마, 바, 파, 빠,”
“이 역시 ‘스’와 마찬가지로 ‘므’가 기본이구나, 그러면 입술모양을 네모로 하면 되겠구나. 마침 한자의 입‘口’도 있으니, ‘므’에 힘을 주니 ‘브’가 되는데 획을 어디에 붙이지?”
대왕이 고심하는 것을 보는 우리가 답답했다. ‘그냥 ‘ㅂ’하면 될 텐데....‘
“아바마마 여기 가림토에 ‘ㅍ’가 있아온데 이를 이용해 보심이...”
정의 공주의 말이다
“그렇지요. 아바마마 ‘ㅍ’가 ‘ㅁ’에서 획을 좌우로 붙였으니 한 쪽만 붙이면 어떨까요?”
“그래 동궁 말이 맞다. 한 쪽만 붙이면 되겠구나.”
“이왕이면 보기 좋게 세우면 좋을 듯 합니다. ‘ㅂ’이렇게 말입니다.”
정의 공주가 글을 써보였다.
“그래 보기가 좋구나, 가림토에는 없는데, 역시 공주라서 그런지 미적 감각이 좋아!”
“황송하옵니다. 아바마마~“
“이제 혀 소리를 내어보자”
“느, 드, 트, 뜨 인데 혀가 입천장에 닿아서 내는 소리이고 이 역시 느가 기본이되는 것 같습니다.”
“맞구나, 혀가 입천장에 닿는 모양이면 ‘ㄴ’가 좋겠구나, 그리고 드나 트는 힘을 가하는 차원에서 ‘ㄷ’ ‘ㅌ’로 하면 되겠고, ”
“하온데 ‘브, 프’나 ‘드, 트’는 해결되었으나 더 거센 소리인 ‘쁘’ 나 ‘뜨’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지, 君子 할 때 군의 앞소리(초성)나 버들 ‘柳’의 앞소리를 표기하는 글자가 있어야 되겠고, 암튼 오늘은 그만하자, 더 연구하여 다음에 만나도록 하자. 그리고 동궁, 발성기관을 잘 아는 사람은 알아보고 있느냐?”
“예,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대왕께서는 일과 후면 밀실에서 밤늦도록, 때로는 밤을 지세며 우리말의 음운체계를 연구하였다.
이번엔 발성기관을 잘 안다는 의원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
그는 발성기관 세부 그림을 벽에 걸고는 각 기관의 기능을 설명하였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시할 수 있겠는가?”
대왕께서 ‘느’하셨다.
그는 곧장 혀가 천정에 닿은 모습을 그렸다.
역시나 ‘ㄴ’모양이었다.
“이번엔 ‘르’를 그려 보거라”
의원은 몇 번인가 반복하더니 혀가 반쯤 감기듯 한 모습을 그렸다.
“아바마마, 이 소리는 혀가 잇몸이나 천장에 닫지 않아 계속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가림토에 ‘ㄹ’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둥궁말이 옳구나, 그럼 ‘르’는 이것‘ㄹ’ 으로 해보자. 이번엔 ‘그’를 표시해 보거라”
“상감마마 이 소리는 위아래 어금니가 마주친 상태에서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인지라 그리기가 난감하옵니다.”
“괜찮다. 그릴 수 있는데 까지 그려보아라!”
대왕은 그가 그린 그림에 붓을 들어 목구멍에서 입술까지 곡선(ㄱ)을 그으며 말씀하신다.
“여기서 이렇게 소리를 낸단 말이지... 흠~”
“아바마마께서 그리신 데로 하면 어떨 런지요?”
공주가 가림토 문자와 비교하면서 ‘ㄱ’을 그렸다.
“그렇구나, 공주의 재치가 拔群이구나. 그럼 ‘크’는 목구멍을 중간에서 힘을 주는 모양으로 ‘ㅋ’로 하면 되겠고 ‘끄’가 남았구나”
“아바마마 ‘뜨’와 ‘쁘’도 있사옵니다.”
“그도 생각 중이다. 자네는 ‘뜨’나 ‘쁘’ ‘끄’를 표시해 볼 수 잇겠나?”
의원은 ‘뜨,’ ‘쁘’, ‘끄’를 수십번 반복하더니 아뢴다.
“상감마마, 이 소리는 그림으로 표시하기에는 불가하옵니다.”
“알겠다. 좀더 생각해보자, 그러면 ‘흐’와 ‘으’를 그려 보아라”
공주와 동궁은 ‘흐’‘으’하면서 소리를 내고 의원도 소리 내며 동궁과 공주의 입안을 살펴보더니 붓을 들었다. 목구멍에 목젖이 달린 모습과 목젖이 조금 접힌 채 목구멍이 반 닫힌 두 가지 모양이다.
“상감마마, 이쪽이 ‘으’이옵고, 이쪽이 ‘흐’이옵니다.”
“그래, 내가 처음 목구멍을 동그라미로 표시하였지...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각자 그려 보아라”
동궁과 공주는 따로 글자를 썼다. 두 사람 모두 ‘ㆁ’ ‘ㅎ’모양을 그렸다.
“허! 어찌 그리 내 생각과 같으냐,? 공주가 설명해보아라.”
“아바마마. 동그라미에 목젖을 표시하고 ‘ㆁ’, 이 것에 목구멍이 반 닫힌 모양을 나타내다보니 ‘ㅎ’그 말고는 방법이 없아옵니다.”
“하하하... 맞다, 맞어, 우리 선조들께서도 소리 내는 구조를 알고 있었던 게야. 그래서 소리마다 글자를 만드신 거지,”
“하오면 아바마마, 가림토의 ‘ㆆ’는 어떤 소리일 런지요? ‘으’와 ‘흐’의 중간소리?”
“더 연구해 보자구나? 어쨌든 말이란 소리가 모여 즉 소리마디로 만들어 지는 것인 즉 이 글자들을 만들어 조합하면 말과 글이 일치하는 문자가 될게야.”
“그러면 우리말의 구성요건이나 구조도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동궁의 노력이 가상하도다. 눈이 피곤하구나. 오늘은 이만하자, 그리고 자네는 오늘 여기서 한 일들에 대해 소문을 내지 말거라,”
어디선가 딩~~하며 종소리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형님 우리가 쉽고 편하게 쓰던 한글이 이토록 어려운 과정으로 만들어진 줄 몰랐습니다.”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조선의 글이 임금이 손수 만들다니...”
“동생, 방금 저 종소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입지요. 지금 시간으로 보아 아마 삼경(새벽1시)일 겁니다.”
“아참! 동생, 장영실이가 만들었다는 自擊漏라는 시계가 있다지? 그걸 보러 가세나.” “좋습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생시 때 복원한 것을 본 적 있지만.. ”
報漏閣에 설치된 자격루는 21세기 소위 최첨단의 정밀 기기시대에 살았던 눈으로 보아도 그것은 단순한 자동시보 장치인 기기가 아니라 정교한 예술품이었다. 지렛대의 원리, 수압과 부력을 이용하였는가 하면 물체의 낙하속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한 치의 착오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장영실은 단순히 뛰어난 기술자니 匠人이 아니라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셈이다.
넋을 잃은 채 관찰하였다.
“여기 비문이 있는데 형씨께서 읽어보시겠소?”
장영실과 함께 작업했던 김빈이 쓴 내용이다.
「음양이 번갈아 밤과 낮이 바뀌고 天道는 소리없이 돌며, 神功은 자취가 없다. 皇帝때 이래 천지의 도를 이어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었으나 그 법이 달리하였고 우리나라도 옛제도가 허술하여 지금에야 비로서 큰 법식을 만드니 이는 우리 임금의 준철(濬哲)하심이니라. 장대한 이 장치는 하늘을 본받아 만든 것인데 그 주조가 자연과 같고 그것을 본뜬 이치가 어긋남이 없어 마치 귀신같아 보는 사람이 모두 탄식한다. 이에 표준을 세워 무궁하게 전하리라.」
‘대왕께서 드디어 조선의 시간을 확보하셨구나!‘
“형님, 이왕이면 玉漏도 보시지요?”
“옥루? 그것도 장영실이가 만든 물시계인가?”
“그렇지요, 자격루는 조선의 표준시계이고, 옥루는 임금님을 위한 궁중시계인 셈이이지요, 뿐만 아니라 각종 天文儀器를 하나로 종합한 만능시계라 할수 있지요.”
“그런가? 어서 가봄세”
“대왕께서는 장영실이가 이 시계를 만들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節侯를 알려준다.’는 뜻으로 흠경각(欽敬閣)이란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자격루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여기서는 충격이었다.
하루의 시각을 12분단위로 알려주는 것이 자격루였다면 옥루는 해가 사계절, 24절기에 맞게 움직이는 모습 까지 자동으로 표시해주는 것이다.
해 밑에는 옥으로 만든 여자인형 넷이 손에 금 목탁을 잡고 구름을 타고 사방에 서있다가 제 시간이 대면 목탁을 두들긴다. 그 밑에는 청룡 백호 주작현무 등 사신들이 제 위치에서 산을 향해 섰다가 제 철이 되면 돌아섰다가 다른 사신들이 돌때까지 기다린다. 산 축대 밑에는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채 산을 등지고 있다가 갑옷을 입은 무사 세명은 종과 방망이, 북과 북채, 징과 채칙을 들고서 인형의 지시에 따라 절기별 북을 치기도 하고 징을 치거나 종을 두드린다.
산밑 평지에는 12지신이 서있으며 12지신 뒤 구멍에서 시간이 되면 옥녀가 시간을 알리는 패를 들고 나와서는 그 지신과 함께 다음 시간이자 지신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밀한 시간을 알려면 정밀한 천문관측기술이 전제되어야 할 터인즉..”
“있고 말구요, 渾天儀라는 천문관측기 겸 천문시계도 있는 걸요?”
“나도 들어봤지만, 혼천의가 관측기겸 천문시계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구먼”
“그 역시 물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인데 저 역시 실물은 보지 못했습니다.”
“거기도 가볼까?”
“잠시만요, 거기가기 앞서 지난번 ‘단군세기’를 보면서 ‘오성취루(五星翠樓)’라는 천문현상이 관측되었다고 했습니다.”
“오성취루? 그게 무슨 현상인가?”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혹시 형씨께서는 아시는가?”
“글쎄요, 저도.. 5섯 별이 한데 모였다는 것인지...”
“고조선시대에도 천문을 관측하였다는 뜻인데, 암튼 관측된 그곳으로 가보세나,”
캄캄한 밤하늘,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며 땅으로 쏟아지듯 했다. 3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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