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설 "하늘에서 역사기행"

하늘에서의 역사기행5

둥지방 2017. 3. 5. 10:17

하늘에서의 역사기행 5

-최고의 휴매니즘 ‘홍익인간’

 

삼국유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일연스님이 지은 것을 제자 무극(無極)이 간행한 것이다.

“홍익인간이 나온 부분은 어디지?”

“여기 있네요, 기이(奇異)편에 있습니다.”

동생은 홍익인간이 있는 문구를 가르키며 말했다.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囯(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라!”

“형씨가 전체를 읽어 주시겠습니까?””그러지요, 「위서에 이르기를 2,000년전에 단군왕검께서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 하시니 ‘고’와 같은 시대이다. 아사달은 ‘경’에는 무엽산 또는 백악이라 하며 백주에 있다. 혹자는 개성의 동쪽에 있는 지금의 백악궁 이라고 한다.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며 고와 같은 시기다.」“

“위서라함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 역사책인가?”

“글쎄요, 위서의 종류가 많아서, 조조의 위나라 왕침이 쓴 게 있고 5호16국때 북위의 역사책인 북제의 위수라는 사람이 쓴 게 있습니다만,..”

“중국역사라 역시 형씨가 잘 아시는 구먼,”

“고교시절에 배운 겁니다. 내용은 모르지만요”

“음, 그런데 高는 누구인가? 동생은 아는가?”

“요임금의 이름입니다.”

“아~ 요,순시대할 때 그 요임금이구나, 요,순임금은 어느 나라 왕이었던가?”

“唐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전설상의 임금으로 알려져 있어, 정확히는 모릅니다.”

“지난번 가륵천자님시대를 갔을 때 순임금 나라는 조선의 제후국이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태평성대의 대명사이며 삼황오제중의 두 사람 요, 순임금이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는 게 저도 깜작 놀랐습니다.”

“저도 믿어지지 않아요!”

중국인 친구가 힘없이 말했다.

“됐고, 다음을 읽어보지,” 『古記云. 昔有桓囯(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국이 있었다.(제석을 말한다)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 땅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바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 내려와 이를 일러 신시라고 하였으니 그를 환웅천왕이라 한다.」

“여기서 古記는 무슨 책인가? 환국은 또 뭐지?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나?”

“고기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단군세기에도 기록이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환국이란 말도 처음 들어봅니다. 배달국이전에 나라가 있다는 것인데 믿기지 않네요”

“아니 이 책에 분명 환국이라 기록되어 있잖는가?”

“저도 헷갈립니다. 제가 배운 삼국유사에는 ‘昔有桓國’이 아니라 ‘昔有桓因’으로 배웠는데 어찌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일연 스님이 두 권을 썼을 리 없고. 후대 내려오면서 간행과정에서 오자가 생긴 걸까? 아님 일부러 조작하거나...”

“그럴 수도 있겠지요. 간행본이 몇 개 되다보니...,암튼 이 책이 제가 배운 것보다는 500년이상 앞선 것이고, 이게 원본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 진본을 확인하러 가야겠네.”

“그러지죠, 환국이라, 환국이라,,,”

동생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제석은 또 뭔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란 뜻입니다.”

“환국이 부처님 계시는 곳이라? 스님다운 주석이네, 그래서 전설상의 신화로 인식된 모양이군, 그리고 한웅은 하필이면 왜 첩의 자식인 서자였지?”

“환인으로 배웠을 땐 저도 환인의 적장자가 아닌 서자로 생각했는데 환국이라면 달리 생각해볼 수 도 있습니다. 가령 고려시대 서자라는 부서가 있었듯이 환국의 어떤 부서를 말하는 것일 수 도...”

“맞아요, 우리 중국에서도 태자의 스승이나 높은 벼슬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여러 아들 또는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많은 사람이라... 그러면 부족을 뜻할 수 도 있겠군요, 아니면 서자벼슬을 한 사람이라든지...”

“음, 듣고 보니 그렇네. ‘서자 부족 환웅’ 또는 ‘환인의 여러 아들 중 한 사람 환웅’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겠다.”

“선생님, 여기 ‘삼성기’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도 환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뭐요? 삼성기? 어디 봅시다.”

동생은 화들짝 놀라며 그 곳을 갔다. 나 역시 뒤따랐다. 중국인 친구는 한 참 떨어진 서가에서 책을 보고 있다.

“이것 보세요, 여기에 ‘吾桓建國最古’ ‘謂之桓國’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책이...”

“이뿐만 아닙니다. 저자는 다르지만 또 다른 삼성기도 있어요.”

두 권의 삼성기. 한 권은 안함로가 쓴 것이고 또 한권은 원동중이가 쓴 것이다.

“안함로? 원동중? 이 사람들이 누굴까?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데,,,, 그렇지!”

“뭔가?”

“얼마 전에 우리말로 번역된 조선 실록을 읽은 적 있는데 세조 예종 성종실록에 收書令을 내렸는데 거기에 두 사람과 이 책이 포함되었습니다.”

“수서령? 소위 불온도서를 거둬들였다는 말인가?”

“그런 셈이지요, 상당히 많은 책들이었는데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대변설(大辯說), 조대기(朝代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표훈천사(表訓天詞)· 등이 기억납니다.”

“그 기준이 뭐였는데?”

“아마도 조선 통치이념 즉 유교이념에 맞서거나 혹세무민 등이겠지요. 자진 신고하면 상을 주고 은닉하다가 발각되면 참형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형까지 한다고? 도대체 어떤 내용들이기에...”

“우선 내용부터 봅시다.”

동생이 책을 펼치자 중국인 친구가 해당되는 부분을 짚어주었다.

「吾桓建國最古」첫 장 첫 구절이다. 이어서「謂之桓國」「是謂天帝桓因」「後桓雄氏繼興」「在世理化弘益人間」「立都神市國稱倍達」등이다.

“동생, 이 책이 혹시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고기’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됩니다만, 잠시만요! 세조이후 실록에 언급되었으니 세종대왕시절에는 그 책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책들 중에서 고기가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그럼 그것도 찾아볼까?”

“우선 이 책부터 읽어보도록 합시다. 형씨 읽어 보실래요?”

중국인은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환인께서 만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어 ~~~~~환국이라 했다. ~~~~이어 환웅씨가 계승하여 ~~~천부인을 지니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시며 신시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셨다.’

“그만, 그만, 되었어요. 형님. 어서 배달국에 가봅시다.”

동생은 흥분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나 역시 안달이 났었다. 그가 읽는 중에 ‘사백력(斯白力)’이니 ‘天帝桓因’이니 ‘안파견(安巴堅)’ 등 어려운 용어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배달국이 있는 것은 확실하므로 조금이라도 빨리 배달국으로 가고 싶었던 참이었다.

“형님, 우리는 배달겨레, 배달민족이라 했잖습니까? 이제 그 뿌리를 찾으러 갑시다.”

“그러세, ‘홍익인간’도 알아봐야지? 환웅천왕이 최초로 오셨다는 신시 신단수로 가면 되겠지.”

.....

“저- 아래가 신시인 모양이군. 형씨, 여기가 어디쯤일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신시는 광활했다. 남쪽으로는 우뚝 쏫은 산과 그를 잇는 좌우 산맥이 병풍처럼 둘렀고 산맥을 마주보며 멀리는 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저 강은 송화강 지류인 것 같고 저산은 장백산인 것 같습니다.”

“장백산이라니! 백두산입니다. 형씨”

동생이 퉁명스레 말했다.

“조선에서는 백두산이라 하지만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합니다.”“남의 나라 지명을 그대로 불러 주어야지 왜 당신들 멋대로 이름을 바꾸느냐 이겁니다.”

“아, 그렇군요. 아시다 싶이 저 산의 반은 우리 땅입니다.”

“뭐요? 당신들 땅? 당신들이 강압적으로 뺏어간 것이지...”

“강압적으로 뺏다니요? 북 조선 김일성이 6.25 해방전쟁 때 우리가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넘겨준 것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영토를 무슨 물건처럼 넘겨주고 할 수 있어요?”

“동생, 그만하게. 그건 저 친구 말이 맞네. 1950년대 후반 소련의 소위 ‘수정주의 노선’을 취하자 쏘련에 대한 불신과 체제유지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김일성은 모택동의 지원을 받고자 6.25의 혈맹관계를 내세워 백두산 天池를 중심으로 봉우리 16개중 10개를 중국에 割讓하는 密約이 있었다네.” “저런 죽일 놈 봤나? 전쟁으로 수없는 동족을 죽게 한 것도 모자라 우리 땅을 상납하다니, 힘이 없어 억울하게 빼앗긴 백두산 定界碑에 명시된 우리 땅 간도를 되찾지는 못할망정 민족의 靈山을 고스란히 上納하다니..”

동생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치를 떨었다.

“동생, 그게 바로 매국의 전형이 아니겠나. 그러면서도 ‘주체’니 하며 우리를 향해서는 사대주의 운운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미 제국주의 식민지’라고 떠들고 있지.”

“기가 막힙니다. 내가 학생들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가르쳤어야 했는데...”

“아참, 형씨, 어때요? 우리나라가 북한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의 식민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30년 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지요.”

“30년 전이라뇨?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

“86아세안 게임, 특히 88서울 올림픽입니다.”

“서울올림픽? 그게 왜?”

동생의 눈이 커지면서 질문했다.

“미국의 식민지인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게 믿을 수 없었지요, 게다가 한동안 미국과 쏘련간의 갈등으로 80년 84년 반쪽 올림픽 때문에 서방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88올림픽에 참가하여 미국의 속국내지는 식민지라 여겼던 아주 작은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보다 훨씬 발전된 나라임을 직접 경험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갓 대학생이던 나도 TV를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한류와 함께 우리의 변방국인 북조선 인민들이 탈북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을 부러워하였지요.”

“88올림픽이 사회주의국가들에게 그렇게 큰 충격을 주었다니 믿기지 않네요.”

“동생, 쏘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88올림픽이후 몇 년 사이 붕괴된 것이 우연이 아닐세...”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결과적으로 88올림픽이 공산주의체제를 몰락하게 한 원인이 된 셈이군요.”

“우리 중국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입각한 실용주의적 개혁으로 경제 발전을 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인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게 되었고, 물론 삶의 질은 높이지는 반면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긴 했지만...”

“그 개혁의 근간은 사적 이윤추구와 소유의 확대였는데 그들은 자본주의란 말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거의 자본주의체제였다고 볼 수 있지. 그렇지만 실용주의 등소평도 중국공산당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공산주의 근간을 흔드는 자본주의사상은 용납할 수 없기에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천안문의 대학생시위를 탱크로 무참하게 진압할 수 밖에 없었겠지?”

“형씨, 천안문 사건도 서울 올림픽과 무관하지 않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중국인민들은 그 사건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형님, 저 아래를 보십시오. 곧 행사가 거행될 모양입니다. 내려 가보시지요.”

궁궐은 넓은 들판에 우뚝 솟았다. 그러나 아사달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성곽은 물론 성채도 없고 궁궐도 웅장하지 않았다. 화려한 채색이나 단청도 없이 자연그대로 다듬었다.

궁궐에서 좀 떨어져 3단의 원형 제단이 궁궐을 마주 한 채 설치되었다.

제단을 앞으로 하여 양 옆으로 도열한 병사들은 날렵하게 만든 석창에 나무방패를 지녔고 什長의 지휘자들은 짤막한 동검을 휴대하였다.

중앙에는 부족을 대표하는 여러 부족장들이 자신이 이끌고 온 부족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다. 그 중 어떤 사람은 목걸이나 귀걸이 또는 요대 등 옥으로 만든 장신구를 지니고 있었다.

운집한 모든 백성들은 머리에 상투를 틀었다.

“동생 이 시대는 아직 석기시대를 못 벗어난 모양일세.”

“당연하지요, 아사달 시대보다 1,500여년이나 앞선 시대인걸요. 우리 시대로 계산한다면 6,000년 전입니다. 신석기 말기 청동기 시작 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난번 아사달 시대 때도 믿기지 않았는데 6,000년 전에 이렇게 고도의 문명이 있었단 말인가? 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옥 장식물 보게나, 어찌 저렇게 정교하게 만들었을꼬? 예술품이야, 요즘도 저렇게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저 역시 그게 궁금합니다. 옥을 저렇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대단한 기술이겠지요. 특히 실을 꿸 수 있도록 구멍을 뚫으려면 옥보다 강한 어떤 물질이 있거나 옥을 녹일 수 있는 첨단의 기술이 필요할 겁니다. 이는 인류역사의 새로운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다음에 옥 문화시대라고 부르지 뭐. 허허”

“잠깐요 선생님, 옥 문화시대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수년전에 요령성에 근무할 때 30여년 전 홍산에서 옥기가 무더기로 출토되어 학자들이 옥 문화시대라고 했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역도 이 부근인 것 같고 그 옥이 바로 이건가 봅니다.”

“맞습니다!”

동생이 손가락을 튕기며 외치듯 했다.

“1980년대 황화문명보다 훨씬 앞선 홍산문명이 발굴되었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고, 그 문명의 주인공이 누구인가가 논쟁거리였습니다만 정작 우리 학계에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이미 자기들의 역사로 편입시켰는데 그 문명의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는 우리 배달민족인 것입니다.”

“허어, 후손들이 못나서 이처럼 찬란한 우리 민족역사를 고스란히 중국에게 넘겨준 꼴이구먼.”

“그야 중국영토 안에 있는 역사이니 당연히 중국역사 아닙니까?, 조선족이 만든 문화이며 역사라 할지라도 현재의 조선족은 우리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서 지방역사인 것이죠.”

“이보시오 형씨,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당신들의 지방 역사라니, 지금 이곳의 현실을 보고서도 그 말이 나오는 겁니까? 현재 당신들의 땅이라 해서 이 역사가 당신들의 역사란 말이요?”

동생이 발끈하였다.

“동생 그만하게, 민족사와 그 나라의 역사는 구분될 수 있겠지. 다만 그 역사의 주체나 주인공이 누구인가는 확실히 짚어야 할 텐데 우린 그 마저도 중국에게 빼앗긴 것 같군, 아니 우리 스스로 넘겨준 것 아닌지 몰라”

“형님, 동북공정이란 말 들어 보셨죠?”

“들어보긴 했지.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우리 한국사를 중국역사로 귀속시키려고 하는 작업이라면서?”

“맞습니다. 저 친구 말을 들어보니 이미 그들의 의도대로 된 모양입니다. 우리의 역사 강역마저 강탈당한 셈입니다.”

“동생, 그게 단순히 역사 강탈로만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무슨 말씀인지?”

“중국은 백두산 일부를 상납 받은 것을 계기로 백두산이라는 이름자체를 지워버리고 장백산으로 둔갑시켜 백두산 전체를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세계인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듯이, 후일 북한에 정치적 변고가 있을 경우 자신들의 변방역사의 옛 땅임을 내세워 북한을 점령하는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지 않겠나?”

“일 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형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어야 하고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어야 하니까 충분히 그럴 가능이 있습니다.”

‘환웅 천황 만세! 만만세~’ 천지가 진동하였다.

환웅천황께서 풍백, 운사, 우사 그리고 농사, 왕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관하는 오가(五家)를 거느리고 제단에 나타나셨다. 천황옆에는 한 여인이 자애한 모습으로 게셨다. 곰 부족의 여왕이자 황후이신 웅녀신이시다. 두 분 모두 천지화로 장식한 금동화관을 쓰셨다.

환웅 천황께서는 환인 천제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삼부인 즉 검과 방울, 그리고 거울을 몸에 지녔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든 것이다. 검은 비파처럼 생겼으며 방울은 8개의 방울로 연결되어 방울안에는 옥구슬이 들어있어 움직일 때마다 영롱한 소리를 내었다. 가슴중앙에 걸린 거울은 어찌나 맑은지 햇빛에 눈부셨고 모여 있는 모든 백성들을 거울 속에 다 품었다.

천황께서는 제단에 삼육대례를 한 후 백성들을 향해 두 팔 벌려 동검과 방울을 높이 들고 외쳤다.

“백성들이여, 상제님 보우하사, 우리는 하늘을 어버이로 땅을 어머니로 받들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우주광명을 품고 태어난 천손의 자손이자 환족의 후예임을 천명하노라!”

백성들은 ‘상제님 보우하사!!,’를 여러 번 외친다.

“나 한웅은 환국의 환인천제님으로부터 명을 받아 하늘, 땅, 그리고 사람으로 현현하시는 상제님의 홍익인간의 이념을 펼치고자 이곳에 신시를 개척 건설하였노라.!!!”

백성들은 ‘환웅 천황 만세! 만만세~’로 화답하였다.

“동생, 지금 우리가 배달 조선에 온 것이 아닌가? 환국이라니?”

“형님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환국이 정말 존재한 것인지...”

그는 ‘吾桓建國最古’, ‘昔有桓國’이란 말을 몇 번인가 중얼거렸다.

“백성들이여, 우리는 우주광명의 진리인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하늘의 자손, 환(桓)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홍익인간’을 만대에 잇고자 오늘 이 자리에서 ‘배달국’을 開天함을 만방에 천명하노라!”

“환웅천황 만세!, 배달국 만세! ~~”

“환족의 후예, 배달의 백성들이여 ~, 그동안 상제님의 참뜻을 올바르게 수행 정진한 웅족을 배달국의 으뜸 백성으로 입적하며 제사장을 황후로 맞이하여 배달국의 정기를 대대손손 전하고자 하노라!!!”

“환웅천황 만세! 황후마마 만세!!~”

황후는 백성들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다소곳이 고개 숙여 절을 하였다.

“동생, 웅족의 수행 정진이라는 게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 동안 수행한 것을 말하는 모양일세, 호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서로 경쟁하다가 호족이 탈락되었거나 패하여 변방으로 밀려났겠지요.”

“흐 흐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가 곰 한데 KO패 당했구먼.”

“상제님 보우하사, 백성들이여! 북두(北斗)에 계시는 상제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살피고 계심이라. 성심을 다 하여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들 지어니, 상투는 곧 우리 몸의 북두이자 상제님이 머무시는 곳이니 언제라도 경건히 다듬어 상제님을 기쁘게 할지어다.! 상제님 보우하사,”

“상제님 보우하사, 상제님 보우하사!!~”

“동생, 우리 민족의 풍속인 상투가 여기서 유래한 것이었구먼.”

“그러고 보니 정수리란 말도 상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동생, 배달국이 몇 년간 이어졌을까?”

“글쎄요?”

“18대 1,565년간입니다. 삼성기에 적혀있더군요”

중국인 친구가 대신 답하였다.

“18대? 1,565년? 환웅의 아드님이 단군왕검이라 했는데?”

“물론입니다. ‘환웅’이란 말은 배달국의 천황을 뜻하는 존칭인 것입니다. 단군왕검은 마지막 환웅천황의 아드님인 것입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우리는 그동안 1,565년을 잃어버리고 있었구먼.”  

“황후마마 만세!, 황후마마 만세!~”

황후께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천황과 나란히 섰다. 은은한 빛을 띠는 연옥으로 만든 요대를 둘렀고 그 중앙에는 形而上學的인 곰(熊)모양의 신물(神物)을 걸고 있다. 허리춤엔 옥검을 지녔다.

“선생님 ‘玉’이란 글자가 왜 ‘王’ 옆에 ‘.’이 붙은 진정한 이유를 오늘에야 알겠습니다. 제왕이 지니는 귀하고 성스런 것이 바로 옥이군요.”

황후는 옥검을 높이 들었다. 환웅천황이 들었던 동검과 똑 같은 모양이다.

“백성들이여!~ 미개하고 우매한 우리 부족을 깨우쳐 환족으로 이끌어주신 페하께서는 광대무변하고 원융무애하며 대 광명으로 합치하는 상제님의 도를 실천하셨도다.

나는 감히 환웅폐하를 우주 무한하며, 천지 조화롭고, 광명으로 하나 되는 ‘거발환’으로 받들고자 하나니 백성들도 함께 할지어다.“

“거발환 만세! 만만세!~ 황후마마 만만세!~”

백성들의 환성은 천지산하를 뒤 흔들었다. 이어 모든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절한다.

“형님, 이참에 배달국의 역대 천황을 뵈러 가시죠?”

“그래야지, ‘폐하, 조선의 땅 대한민국에서 온 가마득한 현손이 감히 알현을 청하옵니다.’이렇게 하면 될까? 허허”

....

초대환웅 거발환께서는 26세에 등극하여 재위 94년이요, 2세 환웅은 ‘거불리’시고 18세에 옹립되어 재위 86년이요, 3세 ‘우야고’환웅께서는 36세에 추대되어 재위99년이다.

4세는 ‘모사라’ 한웅이시니 22세에 추대되어 재위107년에 129세까지 사셨다.

5세 한웅 ‘태우의’께서는 22세에 등극하여 12아들을 두셨고 그 막내아들이 태극, 음양 8괘를 창안하신 ‘태호복희씨’다. 재위93년에 천수가 115세였다.

6세는 ‘다의발’ 한웅이시고 12세에 옹립되어 재위98년이요, 7세 ‘거련’ 한웅께서는 59세에 추대되어 81년간 재위하셨으며, 8세 ‘안부련’ 환웅께서는 21세에 등극하시어 73년간 다스렸다.

9세는 ‘양운’ 한웅이시며 43세에 추대되시어 재위 96년이며, 10세 ‘갈고’ 한웅께서는 일명 ‘갈태천왕’ 또는 ‘독로한’이라 불리기도하며 25세에 등극하시어 100년간 통치하셨다.

11세 ‘거야발’ 한웅께서는 57세에 추대되어 92년간 다스리시고, 12세는 ‘주무신’ 한웅이니 18세에 옹립되어 105년간 재위하셨고, 13세 한웅‘사와라’님께서는 33세에 추대되시어 재위67년이었다.

14세는 ‘자오지’한웅으로 세상에서는 ‘치우(蚩尤)천황’이라 불렀다. 원래 대대로 도적을 잡고 병마를 관장하던 치우(治尤)집안의 후손으로 45세에 등극하시어 109년간 통치하셨으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 국토를 동쪽으로 크게 확장하였으며 ‘華’족들이 천둥번개를 주관하는 神異한 軍神으로 여겨 절대 두려워하는 환웅이셨다.

15세 ‘치액특’ 한웅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29세에 추대되어 재위 89년이요, 16세는 ‘축다리’ 환웅이니 43세에 등극하여 재위 56년이었다.

17세 ‘혁다세’ 환웅께서는 25세에 추대되어 72년 재위하셨으며. 18세는 ‘거불단’ 혹은 ‘단웅’ 한웅은 단군왕검의 아버지로서 34세에 등극하시어 48년간 재위하셨다.

비록 열여덟 ‘환웅’의 실존을 확인코자 한순간에 둘러보고 왔지만 꿈을 꾼 느낌이다.

배달국이 실재 있었다니, 단군조선의 일부이거나 단군조선의 또 다른 이름으로만 알았던 배달국이 동북아를 비롯한 중원역사의 주인공일 줄이야...

“형님, 단군조선을 여행하며 잃어버린 2,000년의 역사를 되찾았다고 한다면 이번 배달국 여행은 땅속 깊이 묻혀 신화나 전설마저 없던 역사를 발굴한 느낌입니다.”

“역사를 발굴했다? 역사교사다운 말일세. 그런데 형씨는 표정이 어찌 그러시오?”

“사실 저는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류 문명의 신으로 숭앙하고 있는 태호복희씨가 실재 존재하였다는 것과 그 분이 우리 화족이 아니란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런, 우리 조상님을 당신의 조상님으로, 그것도 신으로 받들고 있다니, 그건 역사 도둑질입니다.”

“허~ 동생 너무 흥분하지 말게, 길에 떨어진 물건이란 줍는 사람이 임자인 법일세. 물론 주인을 찾아 주려는 노력을 안했다면 그건 강탈이고 도둑질이지, 지금부터라도 잃어버린 사람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찾아야하겠지.”

“그들이 돌려주기라도 하겠습니까? 현재 자기 땅에 있는 물건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인데,”

“ 돌려받지는 못하더라도 주인이 누구인가는 밝혀질 수 있겠지. 형씨 또 다른 것도 있어요?”

“있습니다. 내가 배운 바로는 우리 황제에게 잡혀 처참히 죽었다는 치우란 반란군 우두머리가 배달국의 치우천황이었고 거기다 151세까지 천수를 다했다는 겁니다.”

“치우천황이 반란군이었다? 정말 역사 왜곡이구먼,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사마천의 사기에 있습니다만,”

“사기에? 중국역사 서술의 표준이 된다는 사기에? 이건 왜곡이 아니라 허위 날조된 것 아닌가? 史記가 아니라 詐欺이구먼,”

“형씨,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아시오?”

“물론 압니다. 공자가 노나라 역사를 서술한 ‘춘추’를 후세 사가들이 역사서술의 표준으로 삼는 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서술하는 것이 춘추필법인가요? 형씨?”

“대의명분을 밝혀 역사를 정확히 기록한다는 서술법이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춘추필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동생.“

“있고말고요.”

동생은 춘추필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유학자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춘추필법은 실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中華主義에 입각한 史觀으로서 그 원칙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위국위치(爲國諱恥)입니다.

‘나라를 위해 부끄러운 것은 기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春秋穀梁傳(곡량전)에 나오는 ‘존귀한 사람을 위해 부끄러운 것은 기록하지 않고~’(爲尊者諱恥~ )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尊(사람)대신 國(나라)자로 바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영광스런 일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일은 슬쩍 감추는 기법이며 수법인 것이지요.

둘째 존화양이(尊華攘夷)입니다.

이는 공양전(公羊傳)에 尊王攘夷(양이) 즉 주나라왕실은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말에 근거를 둔 것으로 尊王을 尊華로 바꿔 漢族의 위상을 높이는 대신 주변나라는 깍아 내리는 것입니다.

셋째 상내약외(詳內略外)로서,

후한말기 徐幹(서간)의 저작 中論에 ‘공자가 춘추를 지으면서 중국을 상세히 하고 밖의 오랑캐를 간략히 하며~(孔子之制 ’春秋‘也 詳內而略外~)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그들의 역사는 상세히 서술하지만 이민족역사는 간략하게 적거나 생략하는 필법인거죠.

위의 원칙에 의해 역사를 기록하다 보니 많은 사서들이 我田引水 격이거나 왜곡 날조된 것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기록들을 다각도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소위 ‘춘추필법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근세 역사학자 양계초(梁啓超)가 ‘중국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목적을 위한 秋草의 노릇을 할 뿐이다’. 라고 했겠습니까?

신채호선생님도 사마천을 위 세 가지 원칙을 굳게 지킨 완고한 유학자라 했습니다.“

“음, 춘추필법의 이면에 그런 것이 있었구먼, 역사서술에 완벽한 객관성이 있을 수 없겠지만 치우천황건은 너무했다 싶구먼. 형씨는 어때요?”

“유구무언입니다.”

“형님, 바로 확인해봅시다.”

“그러자꾸나. 사서도 확인하고 치우천황도 다시 만나보세“ 5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