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의 역사기행4
- 3,750년전의 우주 쇼 ‘오성취루’
“동생, 어느 시대, 어느 장소로 가야되지?”
“기록에는 흘달(屹達)단군 50년 무진(戊辰)년으로 되어있습니다만,”
“남북 2만리 동서 5만리나 되는 그 넓은 천지에 어디로 가야된단 말입니까? 그리고 날짜도 없는데...”
중국인 친구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장소는 아무래도 수도인 아사달에 가면될 것 같은데, 날짜는 형님께서 무진년 그해를 다 검색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세.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
흘달단군, 재위 50년, 무진년, 오성취루, 조건을 넣어 시간을 돌려보니 음력 7월 11일~7월 13일이다.
“잠깐!”
“뭔 일입니까?”
“그러고 보니 오성취루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 몇 년 전이었던가, 우연히 어느 TV에서 천문연구원 교수가 오성취루 천문현상이 실재 있었음을 천문관측용 컴퓨터로 검증하였다는 걸 잠시 본 적 있어, 그때는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는데...”
“그래요? 그러면 어서 가봐야겠지요?”
아사달은 축제분위기다. 연초에 7월 이날은, 개국이래 두 번째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의 다섯별에 더하여 달까지 일직선으로 모인다는 소위 오성취루 현상을 ‘監星’의 천문관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감성은 11세 ‘道奚’(도해)단군께서 천문 관측을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특히 이날은 초저녁에 나타난다 하여 온 백성들이 환호하며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뭇 여름 농사일에 땀 흘리던 백성들은 머지않은 가실을 앞두고서 풍년을 예상했음인지 벼가 익는 것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아직 해가 질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음에도 남녀노소 수많은 백성들이 蘇塗주변에 모였다.
“이보시게 동생, 소도라는 게 그냥 솟대나 설치한 무당들의 굿터정도로 알았는데 어마한 큰 神殿일세!”
“저도 놀랐습니다. 기록을 보니 소도의 유래가 깊습니다.”
소도는 배달 환웅께서 ‘神市’(백두산)에 나라를 開天하면서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던 성서로운 장소이다. 둘레에는 박달나무를 심었고 주변에 가장 큰 나무를 상제님이 항상 머물고 계신다는 뜻으로 ‘웅상’(雄常)이라 했다.
도해천자께서는 상제님의 뜻을 만백성들에게 더 믾이 전파하고자 전국 12名山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해 소도를 만들고 國仙을 선발하여 이들로 하여금 소도의 참뜻을 받들게 하였다,
흘달 천자께서는 더 많은 소도를 설치하시고는 주변에 상제님이 내려주신 天指化(무궁화)를 많이 심으셨고 경당(扃堂)을 설치하여 국선들이 학문과 무예를 닦아 상제님과 나라를 위한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니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했다. 그들은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고 다녔기에 천지화랑이라 불렀다.
소도앞 넒은 광장에서는 ‘烏羽冠’(오우관)에 새 깃털과 천지화를 꽂은 미소년 국자랑들이 말을 달리며 활쏘기 등 각종 무예를 시범보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묘기에 박수치며 환호하였다.
“저들은 신라 화랑이 아닌가?”
“신라 화랑제도가 그냥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고구려의 ‘皁衣仙人’이나 백제의 ‘無節’등이 이에 연유한 것 같습니다.”
“조의선인? 나도 들어 본 것 같구먼, 연개소문이나 을지문득장군이 조의선인출신이라지”“맞습니다.”
어느 사이 해가 졌고 옅은 어둠이 서서히 몰려오는 중에 왼쪽 하늘에서 상현조각달이 비스듬하게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사방에 별들이 하나 둘 반짝일 무렵 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 다섯별이 한 뼘 간격으로 일직선으로 정렬하였다. 다섯 별들은 유난히도 찬란하게 반짝이며 빛났었다.
백성들은 환호하며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먹고 마시며, 노래하며 춤추는 축제는 3일동안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천자께서도 함께 하였다.
“형님, 설마 했는데. 고조선시대, 그것도 3,750년전에 이처럼 정확한 천문관측능력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난번 가림토 문자 때문에 단군조선의 실재를 확신하였습니다만 21세기에도 첨단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천문관측기술이 고조선에도 있을 것이란 생각 못했습니다. 그저 미신에 가까운 점성술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역사책에 기록된 것인데 왜 모르고 있었지?”
“그것이 위서니, 조작된 기록이니 하기에 저도 그렇게 믿은 것이지요,”
“아니, 위서의 근거가 무엇인데?”
“고증이 되지 않으면 일단 위서로 보는 것이지요.”
“고증이 되지 않으면 위서라? 저들이 연구를 제대로 못해서 고증을 못한 것도 위서인가? 그리고 고증이란게 뭔가? 꼭 눈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인가?”
“과학적으로 사실을 입증한다는 뜻이지요.”
“과학적 입증? 거참 어렵구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모두가 거짓인가? 어떤 자연현상을 능력부족으로 입증하지 못하고서는 미신이니 초자연이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구먼.”
“그게 實證史學의 맹점이라 하겠지요. 전설로만 알려졌던 트로이 목마가 발굴되고서야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듯이 말입니다.”
중국인 친구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오, 형씨도 역사학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구려.”
“아닙니다. 학생 때 관심이 있어서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런데 그 트로이 목마의 전설은 전설로서라도 교육되고 전해져 왔기에 발굴이라는 큰 업적이라도 있었지, 아예 그 자체를 교육하지 않았다면 그 역사는 묻혀 버렸거나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겠지. 내가 보건데 우리는 사료나 기록이 있음에도 잘못된 것이라 예단부터 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너무 실증사학이라는 것에 목메는 것 아닌가?”
“저도 동감입니다. 무시할 뿐 아니라 자기 사상에 맞지 않으면 그 사료조차 없애려 하거나 왜곡 조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론이나 사상에 맞지 않는 것을 연구하거나 가르치기라도 한다면 이단이라 매도하거나 학계에서 매장시키려 하지요”
“에이! 학문을 하는 학자들이 그래서야... 어쨌든 학문에 이념이 들어가면 그 학문은 순수성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이념논쟁이나 투쟁의 장으로 변하는 거지.”
“흐 흐 그런 건 우리나라에도 많습니다. 우리는 黨이라는 절대적인 이념이 있다 보니 그에 맞추지 않으면 그 학문은 반동이 됩니다.”“그야 공산당의 국가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당은 절대 無誤謬이니까”
“아니, 선생님께서 무오류라는 말을 어떻게 아시죠?”
“뭐, 소시적에 들어본 풍월이지~ 암튼 형씨도 당의 무오류를 믿는 거요?”
“글쎄요, 그렇게 배우긴 했습니다만...”
“확신이 없는가 보지요? 당원이 아니셨나?”
“당원은 못되었습니다만...”
“공산당이 하는 일은 오류가 절대 없다는 뜻입니까?”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거지, 주장이라기보다 일종의 신념이겠지. 형씨, 내말이 맞아요?”
“맞습니다만, 제가 봐도 당이 한 일이 모두 옳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사건 같은 것은 큰 오류였다고 봅니다.”
“허~ 형씨, 그런 말 하면 반동으로 몰릴 텐데?”
“흐흐, 이곳이니까 이런 말 하는 것이지요, 중국이었다면 반동이 아니라 처형 깜이지요,”
“문화혁명이 잘못되었다는 거요?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상의 거두인 리영희 교수가 ‘인류 최초의 인간의식 개조혁명’이라 고 극찬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毛主席의 위대한 업적으로 알고 있는데?”
“동생도 모택동에 대한 환상에서 빠져있었구먼, 하긴, 업적이라면 업적이겠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혁명이란 명분으로 수백만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 희생시킨 업적이지,”
“저도 학창시절에는 反封建, 만민평등, 그리고 자본주의 타파를 위한 인류역사상 위대한 혁명적 실험이었다고 배웠습니다만.... 얼마 전에야 당과 국가, 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극좌적 오류라고 당에서 규정하였음을 알았지요.”
“그래요?, 모택동은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가로만 생각했었는데...한 때는 학생들의 우상이기도 했었고....”
“그게 다 리 영희 교수같은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힌 어설픈 엘리트들의 영향때문이겠지. 형씨, 사회주의 혁명이란 게 무엇인가요?”
"프로레타리아 혁명 즉 공산주의 혁명의 前 단계라고 합니다만,”
“공산주의 혁명의 전 단계라고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같은 개념이 아닌가요?”
“反 자본주의라는 차원에서는 같은 개념일 수 있겠지만 맑스, 레닌이 말하는 공산주의사회와는 차이가 있지요,”
“어떤 차이인가요?”
“중국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처럼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봉건잔재가 많은 농업사회였기에 순수 프로레타리아 계급만으로 혁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 농민, 그리고 반봉건 지식인들과 연합하여 봉건자본주의를 완전히 타파한 후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도 혁명중인가요? 그게 언제 끝나는 거요?”
“평등한 노동과 분배를 할 수 있는 완전한 공산주의사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니 혁명중인 것은 맞는데, 언제 끝날지는 저도 감을 못 잡겠습니다.”
“평등한 노동과 분배라? 형씨, 그런 공산주의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맑스, 레닌 이론에 의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
“동생도 가능하다고 믿는 감?”
“가능성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상적인 사회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사회를 추구하고자하는 과정이나 노력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평등사회라... 평등이 어떤 것인데?”
“차별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형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중국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별 없는 것이 평등이라? 사람이란 서로의 차이가 있는데 차별이 없을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 하네만”
“차별이 있는 것이 평등이라뇨?”
“나도 과거에는 동생처럼 차별이 없는 것이 평등이라 생각했었지만, 생각해보게,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생산한 사람이나 적게 한 사람이나 똑 같이 분배를 한다면 그게 진정한 평등일까? 그것은 평등이 아니라 평균일 뿐이야.”
“그 평균이라도 유지된다면 대체적인 평등사회라 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그 평균은 유지가 되지 못하는 법이야, 상향은커녕 하향하기 마련이지,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평등의 가치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이상사회일까?”
“그래도 빈부의 격차가 없어 사회갈등이 없는 사회가 될 수 있잖습니까?”
“그럴까? 형씨, 중국은 어때요?”
“솔직히 중국도 빈부격차가 대단합니다. 인민들이 그걸 알고 있지만 대 놓고 표출하지 않을 뿐이지요.”
“표출을 했다간 ‘천안문사건’ 같은 사태가 발생하겠지~, 게다가 계급사회를 없앤다더니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인민을 수탈하는 그런 사회를 지상낙원 운운하고 있지”
“쏘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된 후엔 우리 중국에서도 지상낙원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간은 그렇겠지. 언젠가는 또 지상낙원을 내세우며 혁명한다고 하겠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씨는 ‘공산주의자의 信條’라는 것 들어 봤는가요? 당원이 아니라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그 신조에 보면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고, 필요하다면 공산주의를 포기한다’라는 선언도 하라고 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맑스 레닌의 전략전술에서 본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인류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전략전술’이라는 이론적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 이론이 워낙 다양하고 교묘하다보니 현혹되어 많은 사람과 나라들이 공산주의로 넘어가고 말은 거지.”
.....
“그들의 전술 중에 ‘용어 혼란전술’ 또는 ‘위장전술’이란 게 있어, 평화, 자유, 민족. 해방, 민주 등이지. 동생, 평화의 개념이 뭣인가?”
“그야 전쟁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지요”,
“전쟁이 없는 상태라? 형씨는? 당신들 공산주의에서 ‘평화’는 뭣인가요?”
“솔직히 우리에게 평화란 자본주의가 멸망한 상태를 말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그 말은 자본주의가 있는 한 평화는 없다는 것이지요. 평화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평화를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평화주의자’인양 선전하고 있는 거지.”
“처음 들어 봅니다. 대내, 대외용이 따로 있다니.”
“그뿐인가? 형씨, 공산주의혁명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뭐라고 했던가요?”
“민족주의입니다.”
“예? 민족주의? 당신들은 민족해방이니 하면서 민족이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잖습니까?”
“그게 바로 위장전술인겁니다. 적대국이나 세력을 ‘제국주의’로 만들고는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민족을 해방시킨다며 ‘민족해방’을 부추기고, 전쟁을 의미하는 ‘해방’이란 말로 혁명을 하는 것입니다. 민주란 것도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말하는 것이구요”
“맞아. ‘종교는 아편’이라 규정을 하면서도 종교의 자유니, ‘해방신학’이니 하는 용어로 대중들을 현혹하기도 하지,”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는 이론은 좋으나 실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동생, 공산주의 이론은 좋다고? 천만의 말씀이야, 공산주의는 이론자체도 틀린 것일세,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지 않은 이론일세, 그러기에 그들도 현실성이 없다는 것도 알았기에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인간을 현혹하고 세뇌시키고 이를 위한 혁명의 전략전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그 혁명이 순리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단정하여 폭력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위해 전략전술을 개발한 거지. 그런데 수단인 전략전술이 필요에 따라 권력쟁취의 목적으로 변형되어 수 없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는 거지”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서 전략전술이 있는 것이며 혁명의 과정에는 희생이 불가피하다고는 배웠습니다만,”
“이보시게 형씨,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고 이를 실천할 혁명이라 할지라도 희생, 그것도 피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나는 반대요. 인류 역사에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가요? 특히 공산주의 혁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숫자보다 더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중국인 친구는 묵묵부답이다.
“형님, 맑스의 ‘자본론’을 읽으신 적 있습니까?”
“요약본 정도 읽었지. 동생은?”
“저도 요약본 정도지요, 형씨는 다 읽어봤겠네?”“무슨 말씀요, 그 방대한 내용을 저희도 그저 핵심내용만 배우는 겁니다. 당원들에게는 필수 과정이라 합니다만,”
“마침 생각나는 게 있네, 『배꼽』이란 소설로 유명한 '오쇼 라즈니쉬'는 10만권의 책을 읽었다는데 자본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네.‘공산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는 자본론은 인류역사상 가장 해로운 책이 이 책이다. 그러나 수천만의 사람을 지배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칼 맑스는 전혀 경제학자가 아니라 몽상가였을 뿐이다. 꿈꾸는 자이며, 시인이었다. 그것도 3류 시인이었다. 그는 훌륭한 작가도 되지못했다. 아무도 자본론을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읽으라는 뜻이 아니라 읽지 말라는 뜻에서다. 이 말에 밑줄을 그어라. 이 책을 읽지 말라! 세상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도 많다. 자본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정곡을 찌른 말이지 않나?”
“츠 츠, 맑스가 3류 시인이라? 3류시인이 만든 허상의 늪에 15억의 우리 인민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려”
“어이구, 우리 역사를 얘기하다가 어쩌다 이런 얘기까지...”
“그렇구먼, 암튼 오성취루를 직접 보았으니 입증된 셈이고...”
“하지만 이런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사실을 전할 수도 없고...”
“그렇긴 하네, 아니지, 아니지, 우리 말고도 입증시킨 사람이 있잖아, 그것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말이야, 박석재 교수팀 말일세~”
“박석재 교수팀이라뇨?”
“내가 TV에 봤다는 그 교수야, 기억을 되살려 확인하였더니 2005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로 선정된 바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이던 박석재교수와 그 후학들인 박창범 교수, 나대일 교수에 의해 2012년 정확히 검증하였다는 거야. 뿐만 아니고 단군세기에 기록된 조수현상이나 일식현상도 검증하였다는 군”
“아~ 그런 사실을 난 왜 몰랐지? 허기사 그 때는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기도 하였지만. 이런 사실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동생은 푸념하듯 말했다.
“나는 말이지, 검증이나 입증도 중요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3,700여년 전에 조수나 일식 등 천문현상을 정확히 관측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에 더 의미를 주고 싶구먼.”
“그렇습니다. 부족연맹 국가로 고대 국가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잘 것 없는 미개한 나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고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초기 삼국시대도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라고 배웠거던, 결과적으로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말하면서도 겨우 2,000년의 역사만 배운 셈이군.”
“역사를 가르쳤다는 선생님으로서 한없는 부끄럼을 느낍니다.”
“동생, 혹시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 아는가?”
“알고말구요, 학생 때 그걸 외우느라 씨름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국민교육헌장은 왜~”
“음~ 거기 첫머리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민족중흥’이라는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민족중흥? 글쎄요, 말 그대로 우리 민족이 다시 일어나자는 뜻 아닌가요?”
“그렇겠지. 그런데 다시 일어나고자 한다면 어느 시대가 모델일까?”
“형님께서는 단군조선시대를 염두에 두는 모양입니다.”
“과거에는 고구려 시대를 생각했는데, 단군조선을 알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단군조선 건국일을 개천절이라 이름 지어 국경일로 정했다는 것은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 연장선에서 민족중흥이란 말이 등장했을 수도...”
“‘弘益人間’말입니까?”
“그렇지 홍익인간.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널리 널리 이익이 되는 인간’”
“건국이념이 ‘홍익인간’입니까? 좋은 이념입니다.”
“형님, 홍익인간이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단군조선의 것이 아니라니?”
“배달국의 이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배달국? 배달국이나 조선은 같은 것 아닌가? 아! 지난번 가림토문자 때문에 보았던 가륵천자님과 삼랑 을보륵이 대화하는 중에 그 말이 나왔지. 그리고 이 소도도 배달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지만,”
“가만, 가만. 환웅천제님이니 배달국이니 하는 말을 들었는데, 단군조선이전에 정말 배달국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 배달국은 누가 세운거지?”
“桓雄입니다.”
“환웅이라니? 환웅은 단군왕검의 아버지가 아니신가? 물론 신화이긴 하지만 , 삼국유사에도 그렇게 기록된 걸로 아는데~”
“좀 더 연구해봐야 하겠습니다만, 환웅도 단군처럼 사람은 아니고 최고 首長의 명칭인 것 같습니다.”
“수장? 왕이라는 뜻? 그러면 그 배달국은 몇 년간 지속되었으며 그 영토는 어디일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확인하러 여행해보시죠?”
“그러야겠지, 그런데 막연히 갈 수도 없고...”
“그 삼국유사라는 책에 기록이 있다면서요? 그것부터 확인해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맞아요, 굿 아이디어입니다. 형씨”
“그러면 삼국유사를 보러 가세나, 집현전에 가면 있겠지.”
“예. 거기가면 삼국유사 말고도 다른 기록도 있을 겁니다.” 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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