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설 "하늘에서 역사기행"

9 부 역사를 개척한 단군조선

둥지방 2017. 5. 31. 15:43

하늘에서의 역사 기행

- 9부 역사를 개척한 단군조선

 

 

 

시간을 돌려가며 환족의 후손들이 미주지역을 개척하고 나아가 고도의 문명 집단으로 성장하며, 그러다 천지의 개벽이나 외부의 물리적인 충격에 의한 흥망성쇠의 부침을 보았다.

형님 우리 선조들이 개척하고 일구었던 위대한 문명과 문화가 소위 洋夷들에 의해 정복당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인류 역사 자체가 정복의 역사 아닌가요? 개척과 정복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개척도 정복의 과정이 아닙니까?”

개척과 정복이라? 개척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고 정복은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 해서 개척은 건설이고 정복은 파괴가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개척은 땀과 희망을, 정복은 피와 절망을 수반하는 것이겠지요.”

선생님, 말이 좋아 개척이지 사실은 정복이 아닌가요? 나는 개척한다고 하지만 상대는 정복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흐흐, 강 형은 역시 맑스-레닌적 생각이군요. 모든 것을 투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니 말입니다.”

사실이 아닌가요? 인간은 자연과의 투쟁, 국가와의 투쟁, 그 결과가 정복과 피정복 관계가 아닙니까? 보다시피 신대륙에 대한 개척은 토착 인디오들의 학살이었고 정복이었습니다.”

언뜻 얼마 전에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중 한 부분이 생각난다.

 

1969720, 닐 암스트롱과 버즈올드린은 달 표면에 착륙했다. 탐험에 앞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몇 개 월 동안 달과 환경이 비슷한 미국 서부 사막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지역은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고향인데, 우주비행사들과 한 원주민과의 만남을 담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우주비행사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연히 마주쳤다. 남자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곧 떠날 원정대의 대원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고 했다.

무엇을 원하세요?

우리 부족 사람들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산다고 믿는다오. 그들에게 우리 부족에서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당신들이 전해줄 수 있을까 해서.”

그 메시지가 뭔데요?”

남자는 자기 부족의 언어로 뭐라고 말했고 우주비행사들이 그 말을 정확히 외울 때까지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게 시켰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이 말의 뜻은 우리 부족과 달의 정령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랍니다.”

기지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은 부족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통역할 사람을 찾았다. 통역자는 껄껄 웃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그런 면에서는 강 형이 말이 맞긴 한데, 그렇다고 인류 역사를 정복의 역사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경험한 황금시대(the golden age)나 환족들의 중동지역 수메르나, 동방개척, 신대륙의 문명은 분명 정복의 역사는 아니었잖습니까?”

그야 처음에는 자연 이외는 정복의 대상이 없었던 것이지요.”

어이구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어요…….”

그래, 강 씨의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인류 역사는 개척과 정복의 반복, 아니지, 개척과 정복이 함께한 역사일 수도 있고……. 그리고 정복이라 해서 그게 반드시 나쁜 역사는 아닐 거고, 강 씨? 자연도 정복의 대상이라고 보시는가?”

중국인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 대상은 아닐지라도 인간들이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이기고자 노력하는 자체가 정복의 과정이 아닌가요?”

강 형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복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을 위한 자연이 있는 것이지 자연을 위한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강 씨가 말하는 정복이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의미이신가?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그건 좀 과한 욕심일 것 같아요.”

산을 깎아 도시를 만들고 바다를 메워 농토를 만들고 강물을 막아 댐을 만들어 홍수를 예방하는 것은 인간이 살기 위해 자연을 지배하는 거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 파괴로 재앙을 초래하고 있어요.”

, 그렇지. 개발이냐 보존이냐? 건설이냐 또 다른 파괴냐? 아무튼 이는 우리 인류발전사에서 항상 화두가 된 말일 거야.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자연을 이용하는 능력은 탁월하지.”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인간이 자연에 순응만으로는 인류가 이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이 아니라 적응하며 이용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용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변화시키고자 도전마저 아끼지 않았지요. 그게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정복인 셈이지요.”

그도 일리가 있는 말일세.”

그뿐인가요? 집 한 채 짓는 것도 자연을 파손하지 않고 지을 수 없으며 내()를 쉽게 건너기 위해 놓는 징검다리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발전사는 자연의 파괴 역사인 것입니다. 그게 자연의 입장에서는 파괴일지라도 인간의 입장에서는 정복인 것입니다. 자연을 정복하지 않고 어찌 피라미드나 뉴욕 같은 인류 문명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이용이자 개발이고, 정복이 아니라 개척인 것이지.”

언제가 중국의 어느 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이 생각난다.

 

절경이고 장관이었다. 운무에 덮여 도대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감을 더해주는 계곡이, 90도 각도의 깎아지른 절벽이 그렇고, 수백 미터 높이의 기암기석을 촘촘히 박아놓은 듯 치솟은 봉우리가 그랬다.

천혜의 절경이 아닌 다른 것에 경악에 이르는 또 다른 놀라움이 있었다. 그것은 절경을 볼 수 있게 한 인간의 노력과 흔적이었다. 1,600m의 산 정산까지 1시간 정도 타야 하는 케이블카, 그리고 수백 미터 높이에서 대롱대롱 매달리며 봉우리 사이를 오가는 아찔한 리프트.

재미있는 것은 케이블카의 출발지가 도심에 있어 주택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사생활 침해니, 도심경관 훼손이니 하며 불가능한 것이겠지만 사회주의 국가라서인지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케이블을 연결하는 그 많은 철탑을 험준한 산악지대에 어떻게 세울 수 있었는지 내 상상력으로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케이블카와 리프트 때문에 고개를 쳐들고 보아야 했던 절경을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400m의 절벽 바위 속을 뚫어 오르내리는 승강기. 기발한 발상과 바위 속을 뚫은 엄청난 작업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수백 미터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장엄한 폭포. 그것이 감쪽같이 속인 인공폭포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정상을 향하는 경사각이 30도 이상이 되는 수백 굽이 비상 차로. 원래는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비상도로였으나 관광코스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 경사로를 관광버스의 질주 덕분에 관광객은 스릴을 만끽하는 즐거움보다 도착하면 살았다는 안도의 가슴을 쓰다듬어야 했을 정도다.

수천 길 계곡을 잇는 천애의 절벽에 그 벽을 깎아 길을 낼 수 없기에 선반처럼 일일이 난간 대를 박아 만든 길. 걷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고 아래로 내려 볼라치면 어지럽기까지 한 이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어려운 공사였기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 길의 안전성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모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관광 상품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것을 노리고 그처럼 무모한 공사를 하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도전과 개척정신, 그것이 순수성을 지니지 못하고 또한 수많은 희생이 따랐다 할지라도 인간이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형님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살았던 이 땅은 언젠가는 인공물밖에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세상이 어떻게 보면 지구의 종말일 수도 있고요.”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본다네. 자연을 이용하고 도전하는 능력을 가졌듯이 자연을 보호하고 지구를 보존하는 노력이나 능력도 그에 못지않다고 봐. 그게 인간이 사는 길이니까 말일세. 보호나 보존이라는 것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용하고 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자연과의 공존 또는 ‘Win-Win’ 전략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 그게 지구라는 생명체의 自淨力이나 自生力이 아닐까 하네만, 물론 그 기간이 얼마인가가 문제지만.”

기간이라뇨?”

신령님의 말을 못 들었는가?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소멸이 있다고 했는데 지구 역시 소멸이 있을게 아닌가? 그게 언제인지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으니까 말일세.”

흐흐 형님, 아무리 짧아도 수백 년은 더 되겠지요?”

동생, 지구의 수백 년이면 여기서 며칠일세!”

~ 그렇군요. 그러면 이곳의 달력으로 몇 년만 되어도 지구는 수십만 년? 이쯤이면 인간으로서는 영원불멸입니다. 그러면 지구 종말을 걱정할 것 없겠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지금의 인류가 그대로 존재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또 어느 시점에 다른 생명체가 이 지구를 지배할 수도…….”

지구의 종말이 곧 인류의 종말이 아닐 수도 있어. 지구에 왔던 외계인처럼 인류도 그때쯤이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분의 달력으로는 성숙기 가을철이라 했으니 휴식기인 겨울이 오기까지는 수천, 수만 년은 더 가겠지만……. 그 휴식기를 종교에 따라 종말이니, 심판이니 또는 개벽이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맞는지 봐야겠지?”

그런데 선생님, 우리 여행이 15일간이라 했는데 며칠 남은 겁니까?”

형님 그러고 보니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 달력으로는 얼마나 지났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 다만 우리는 아직 중간계에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시간대가 있는 걸로 아는데, 암튼 때가 되면 데리러 오겠지. 그때까지 부지런히 여행하는 거지 뭐.”

맞습니다. 아직 가볼 곳이 많은데 다른 곳으로 가보시죠?”

중국인 친구가 재촉하듯 했다.

그러. 이왕이면 개척과 도전의 역사시대로 가는 게 어떨까?”

개척과 도전의 역사라면 창업과 건국의 역사로 가야 하겠지요.”

단군왕검의 시대로 가봄세. 지난번 가림토오성취루때문에 가륵단군님과 흘달단군님을 뵈면서 走馬看山격으로 단군조선을 보았지만 정작 단군조선을 창업하신 왕검님을 뵙지 못 했잖은가?”

맞습니다. 곰의 자손으로만 알았던 단군께서 환인, 환웅님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생각지도 못했던 환인, 환웅 두 분께 정신을 쏟다 보니 직접 뵙지 못해 아쉬웠는데 잘 되었습니다.”

 

단군왕검께서는 배달국 마지막 환웅이신 단웅천황과 웅족의 나라 대읍국(大邑國) 熊氏王의 공주님 사이에 박달나무가 우거진 숲(神檀樹) 속의 聖地 소도에서 태어나셨다.

단군왕검께서는 神人의 덕이 있음인지 자질이 뛰어나고 총명하여 14세 때 외가인 대읍국의 비왕(裨王: 왕을 대리할 수 있는 직위)이 되어 38세까지 국사를 맡으시며 부족의 왕검이 되셨다. 대읍국의 웅씨왕이 전쟁 중에 죽자 왕검께서 그 자리를 승계하여 왕이 되셨다.

배달신시개천 1565戊辰年(단기 원년, 기원전 2333)에 배달국으로 돌아와 배달국의 수많은 왕검들 중 백성들로부터 천제의 아들 신인(神人) 왕검으로 추대 받아 9환족을 하나로 통일하시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새나라 단군조선을 창업하셨다.

그해 上月 삼일(103)에 신단수 성지에서 단군왕검께서는 조선의 개국을 선포하시며 단군의 칭호를 사용하면서 백성들을 위한 8가지의 가르침을 내리셨다.

백성들이여, 우리는 선대의 환인, 환웅성조의 가르침을 받들고 하늘의 뜻을 계승하는 환족이니라. 나 왕검은 하늘을 공경하고 만백성의 무궁한 복록을 기원하고자 8가지 강령을 선언하노라.”

 

백성들이여!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이니, 순수한 정성으로 다져진 일을 가져야 상제님을 뵐 수 있느니라.’

백성들이여!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지어다. 이는 하늘의 법도에 일치하는 것이니 이로써 만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리라.’

백성들이여! 너희를 낳으신 분은 부모요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오직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능히 상제님을 경배할 수 있느니라.’

백성들이여! 너희 남녀는 잘 조화하여 원망하지 말며, 질투하지 말며, 음행하지 말지어다.’

백성들이여! 열 손가락을 깨물면 그 아픔의 차이가 없듯이 형제 간 이웃 간 서로 사랑하며 헐뜯지 말고 해치지 말아야 집안과 나라가 번영하리라.’

백성들이여! 소와 말들이 먹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처럼 서로 돕고 함께 일하고 양보하되 빼앗거나 도둑질 하지 말라, 그러면 나라와 집안이 번영하리라.’

백성들이여! 하늘의 법을 항상 잘 준수하여 능히 만물을 사랑할지니, 위태로운 사람을 붙잡아주고 약한 사람을 능멸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비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지어다. 너희가 이것을 어기면 영원히 상제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몸과 집안이 함께 망하리라.’

백성들이여! 타고난 본성을 잘 간직하여 사특한 생각을 품지 말고 악을 숨기지 말며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지지 말지어다.’

 

동생, 왕검이라는 명칭이 단군왕검이 처음이 아니었구먼.”

배달국 13세 사와라 환웅 때부터 각 부족별 祭政一致의 체제에서 세속 정치를 담당하는 수장인 것 같습니다.”

, 그러면 단군께서 神人왕검으로 추대 받았으니 다시 신정(神政)과 세속정치를 통합하여 제정일치체제를 더욱 강화하신 셈이네.”

개국선언에 이어 단군께서는 여러 신하들에게 어명을 내리셨으니 팽우(彭虞)에게 토지를 개간케 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조(成造)로 하여금 궁궐과 궁성을 짓게 하며 도읍을 건설케 하였다.

또한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어 백성들을 교화하고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기록케 하셨으며 기성(奇省)에게 의술을 개발하고 베풀도록 하셨으며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케 하시며 복희씨의 후손인 희()에게 천문 점성을 통한 나라의 길흉을 예보하는 괘서(挂筮)를 주관케 하시며 치우천황의 후손인 우()에게는 병마와 국방을 담당케 하셨다. 그리고 화백의 따님이신 황후에게는 누에치기를 맡겨 백성들에게 비단과 옷감을 공급케 하셨다.

나라가 번성하며 국토가 넓어지자 조선의 핵심강역의 천하를 진, , 마한의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하시니 곧 삼한관경제이며 5(五加: 牛加, 馬加, 鷄加, 狗加, 猪加) 64족이 삼한의 백성이 되어 이른바 삼한오가체제를 구축하셨다.

도읍지 아사달을 중심으로 서북쪽으로는 대흥 및 안령산맥, 동으로 흑룡, 남으로 북만주에 이르는 진한(辰韓), 진한의 서쪽 강역에서 남으로는 북경, 창해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안령산맥의 남서지방을 아우르는 번한(番韓), 그리고 북만주 백두산 동압록 이하 탐모라(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의 마한(馬韓)으로 나누셨다.

 

번한의 왕으로 치우천황 현손인 치두남(蚩頭男), 마한의 왕으로 웅씨국 왕족인 웅백다(熊伯多)를 임명하시고, 진한의 왕은 단군왕검께서 겸하시면서 번한왕마한왕을 조선국의 좌우 부()단군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72제후국과 분조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티벳 지방과 시베리아 일대까지 옛 환국과 배달국의 강역을 아울렀다.

번한의 수도는 험독(險瀆: 지금의 하북성 개평 동북쪽 탕지보)이며 초대 치두남왕 이래 위만에 의해 정권이 탈취당한 75기준왕에 이르렀으며, 마한은 달지국 백악강(지금의 평양)에 수도를 두어 36세 맹남왕에 이르러 기후(萁詡)가 번한의 왕으로 등극할 즈음하여 사실상 왕국이 해체된다.

마침 배달국 시절부터 조공을 하던 의 요()가 덕을 잃어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자 왕검천자께서는 우() 나라의 순()에게 당의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며 군사를 보내 당을 정벌하고자 하니 요임금은 겁을 먹고 순에게 의탁하여 목숨을 보존하고자 나라를 넘겨주었다.

천자께서는 번한의 왕 치두남으로 하여금 우나라 순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단군왕검 재위 50년에는 홍수가 범람하여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게 되자 왕검께서는 풍백과 팽우에게 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높은 산과 큰 하천을 잘 정비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거처토록 하였다.

역시 백성들에게는 치산치수 잘 하는 것이 최고였습니다. 우리 중국에서도 9년 홍수를 순임금의 우공이 잘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무렵 순임금이 통치하는 우나라에서는 9년 홍수로 그 재앙이 너무나 컸다. 순은 풍우를 관장하는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실패하자 죽음을 명하고 그 아들 가 대를 이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단군 천자께서 번한왕에게 지시하여 도산에 제후들을 소집토록 하여 태자 부루를 보내 제후들과 순의 사신 우사공(虞司空) 우에게 치수법을 전수케 하였다.

부루태자께서는 천자님의 거룩한 뜻을 어기지 말아야 가히 큰 공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상생상극의 원리가 담긴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金簡玉牒)을 내리니 우는 삼육구배하며 나아가 아뢰었다.

삼가 천자님의 어명을 잘 받들어 행할 것이오며, 저희 임금께서 태평스런 정사를 펴실 수 있도록 잘 보필하여 삼신상제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도록 지극한 뜻에 보답하겠나이다.’

왕검천자께서 하사한 치수법으로 나라가 태평하게 되자 순은 천자께서 낭야성(번한왕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성)에 설치된 감우소(監虞所: 우 나라의 정치를 감독하는 기관)로 순행할 때마다 천자를 알현하고 천자의 은혜에 감읍하였다.

천자께서는 운사 배달 신에게 명하여 혈구(穴口: 강화도)에 삼신상제님의 뜻을 전파하고 받드는 장소인 삼랑성을 건설케 하시며 마리산에 제천단(참성단)을 쌓게 하시어 매년 3, 10월 만백성들과 함께 친히 제천제를 올리셨다.

 

강 형, 東巡望秩 肆覲東后(동순망질 사근동후)라는 말을 아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요순시대를 공부하면 반드시 나오는 문구이지요. 서경에 나오는 말로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행하며 태산에 이르러 산천에 제사를 지내고 동방의 제후를 찾아뵈었다는 뜻입니다.”

본 바와 같이 천자를 알현한 것인데 제후라니?!”

제후라는 말에 깜짝 놀라 내가 반문했다.

라는 글자 때문입니다. 후를 제후라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강 형도 단군왕검께서 제후로 보이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배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諸侯의 뜻이 아니라 군주나 임금의 뜻이었습니다. 앞의 근()이란 말이 자전에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뵙는 것을 뜻하며 특히 사()는 극에 달하는 뜻도 있으므로 천자를 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아전인수격으로 후를 諸侯로 해석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겁니다. 전형적인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춘추필법인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중국에서 말하는 대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동안 우리 유학자들이나 강단의 역사학자들도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생, 요순이 성군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그들이 감히 그런 생각이라도 한다면 스스로 불경죄로 여길 텐데 엄두라도 내겠는가? 그만 하고 단군천자님들의 치세를 뵈러 가세나.”

왕검천자께서 재위 93315일 세수 130세에 어천하시니 천하 백성들이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였고 추모의 뜻으로 단기(檀旂: 조기)를 만들어 품에 지녀 천자님의 덕을 기렸다.

부루단군에 이어 가림토문자를 만드신 3세 가륵단군께서는 재위 3년에 신지(神誌: 사관) 고설에게 명하여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기록한 배달유기를 편찬케 하셨다. 그리고 재위 6년에 열양의 욕살(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지방장관) 삭정이가 반란을 일으키자 약수지방에 유배시켜 감옥에 종신토록 가두었다가 후에 용서하여 그 땅의 제후로 봉하시니 이가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재위 13년엔 속국 의 신하 예(羿)가 그 나라 3세 왕 태강왕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고는 조공을 바치지 않자 藍國(남국)과 진한, 번한의 군사를 동원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고 징벌하였으니 천하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 천자에게 복종을 맹세하였다.

재위 45년에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기시고 붕어하셨다.

4세 단군 오사구천자께선 38년간 재위하셨으며 등극하시자 곧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골지방의 대 추장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셨으니 그 후예가 몽골족이었다. 재위 5년에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조개모양의 화폐를 주조하여 재질에 따라 석패전(石貝錢), ()패전, ()패전으로 불리었으며 각각의 값어치를 차등을 두어 물품거래의 기준을 삼으니 나라와 백성들의 경제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오사단군께서 붕어하시고 계가출신의 구을께서 단군으로 추대되어 16년간 재위하셨다. 천자께서는 태백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신 후 신하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셨다. 재위 25월 황충(蝗蟲: 메뚜기)이 하늘을 덮을 만큼 크게 번져 농작물을 망치자 천자께서 직접 황충을 입으로 삼키며 삼신상제님께 황충이 멸해지길 비니 며칠 만에 황충이 사라졌다.

재위 16년 친히 장당경에 순행하시어 삼신단을 봉축하시고 환화(桓花: 천지화, 무궁화)를 많이 심으셨다. 이어 남쪽으로 순수하시며 풍류강을 거쳐 송양에 당도하시어 돌연 병을 얻으시어 갑자기 붕어하시니 백악강 인근의 대박산에서 장례를 치렀다.

가 출신 달문(達門)께서 6세 단군으로 옹립되시어 선제께서 못다 하신 환족의 통합과 치우천황의 웅지를 계승하여 강역이 동서로 5만 리요 남북으로 2만 리나 되었으며 태평성대를 이루셨다.

재위 35년에 여러 왕들을 상춘(常春: 만주지역 장춘)의 구월산에 모아 함께 제사를 지내면서 사관 발리로 하여금 환국 배달의 동방문명개창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게 하시니 이는 곧 서효사(誓効詞)이다.

 

아침 햇살 먼저 받는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셨고(朝光先受地 三神赫世臨), 환인천제님이 일찍이 법을 내셔서 덕을 심음에 크고도 깊사옵니다(桓因出象先 樹德宏且深).

모든 들께서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셔서 환인천제님의 조칙을 받들어 새 나라를 여셨사옵니다(諸神議遣雄 承詔始開天).

치우천황님은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 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사옵니다(蚩尤起靑邱 萬古振武聲 淮岱皆歸王 天下莫能侵).

단군왕검께서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쁨의 소리 구환(九桓)에 울려 물고기가 물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가 새로워졌사옵니다(王儉受大命懽聲動九桓魚水民其蘇草風德化新).

원한 맺힌 자 원한 먼저 풀어주고 병든 자 먼저 낫게 하옵고 일심으로 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옵니다(怨者先解怨 病者先去病 一心存仁孝 四海盡光明).

진한이 나라 안을 진정시키니 정치의 도는 모두 새로워졌고, 마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옵니다(眞韓鎭國中 治道咸維新 慕韓保其左 番韓控其南).

깎아지른 바위가 사방 벽으로 둘러있으나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 서울에 행차하셨사옵니다(巉岩圍四壁 聖主幸新京).

삼한형세는 저울, 저울, 저울판처럼 같으니 저울판은 백악강이요 저울대는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안덕향이라!(如秤錘極器 極器白牙岡 秤榦蘇密浪 錘者安德鄕)

머리와 꼬리가 서로 균형을 이루니 삼각균형의 그 덕에 힘입어 삼신정기 보호하옵니다(首尾均平位 賴德護神精). 나라를 흥성케 하여 태평세월 보전하니 일흔 나라 조공하여 복종하였사옵니다(興邦保太平 朝降七十國 永保三韓義).

기리 삼한관경제 보전해야 왕업이 흉하고 번성할 것이옵니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기보다 삼신상제님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겠사옵니다(王業有興隆 興廢莫爲說 誠在事天神).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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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환국오훈(桓國五訓)과 신시오사(神市五事)를 친히 설명하셨다.

환국오훈이란 환인천제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가르침을 전한 것으로, 매사에 정성과 믿음으로 행하여 거짓이 없게 하라(誠信不僞), 공경하고 근면하여 게으름이 없게 하라(敬勤不怠), 효도하고 순종하여 거역치 말라(孝順不違), 청렴하며 정의를 지키며 음란치 말라(廉義不淫), 겸양하고 화평함으로써 싸움을 하지 말라(謙和不鬪)이다.

신시오사는 환웅천황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필요한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업무와 부서를 구분한 것으로 농사를 주관하는 牛加, 왕명을 주관하는 馬加, 형벌을 주관하는 狗加, 질병을 주관하는 豬加, 선악을 가르치는 羊加이다.

연후에 천자께서는 제천의례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들에게는 먹는 것을 우선으로 삼으며, 농사는 만사의 근본이며,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는 모든 가르침의 근원이며, 마땅히 백성과 함께 일하고 생산하되 무엇보다 겨레가 중함을 가르쳐야 하느니라.’ 하셨다. 그리고 죄수와 포로들을 석방케 하였으며 사형을 없애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읍락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서로 침범치 않도록 하며 위반 시 엄히 다스리는 책화(責禍)제도를 지시하셨다.

또한 그동안 임의적으로 시행하던 화백제도를 공식적이고 항구적인 제도로 삼을 것을 천명하시니 참석한 만조백관과 대소 제후들은 천자의 뜻을 받들 것을 엎드려 맹세하였다. 이때 참석한 제후들의 숫자는 큰 나라가 번, 마한 두 나라요, 작은 나라가 남국, 고죽국을 비롯한 스무 나라이며 그 외엔 크고 작은 3,624개의 읍락으로, 그야말로 상춘의 구월산은 인산인해이며 깃발은 산을 덮고 충성 맹세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이듬해 달문천자께서 붕어하시니 온 천하가 슬픔에 잠겼다.

신라의 화백제도가 여기서부터 유래되었네그려~”

만장일치. 가장 완벽한 민주제도가 아니겠습니까? 그게 잘 안되니까 차선으로 제시된 것이 다수결이겠지요.”

, 강 형 사회주의에서는 만장일치다 이런 건가요?”

동생의 날선 대꾸에 강 씨는 얼버무리듯 말한다.

글쎄요, 그게 자의적인 만장일치인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다수결은 결정에 승복한다는 젓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것이 문제지. 소수의 권리를 내세우다 보면 허구한 날 충돌만 있는 거지. 상부상조하며 상생의 길을 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 길이 무엇일까요?”

나는 말일세, 우리말 중 , , , 이라는 토씨보다는 ‘~라는 토씨를 많이 쓴다면 좋을 것 같아.”

무슨 뜻이죠?”

모르겠는가? ‘내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제외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고 나도 잘 살아야 한다하면 다른 사람도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군요, ‘노동, 농민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노동, 농민도 잘 사는 세상아주 멋진 말입니다.”

두 분께서 만장일치 하셨습니다.”

중국인 친구의 말에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그사이 7세 단군으로 등극하신 한률(翰栗)천자님은 서효사를 새겨(神誌秘詞) 각국에 전파하고 후세에 전승하도록 하는 등 선제의 위업을 계승하며 재위 54년 간 태평성대를 이끄신 후 하늘로 돌아가셨다.

삼국유사와 단재 선생께서 조선상고사에 언급한 신지비사를 실제로 보게 되었습니다만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는데 나는 신지비사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네만 기록에 있는 내용만이라도 가르쳐 보지 그랬나? 하기야 고조선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언급도 못하였겠지.”

태자 우서한(于西翰)께서 8세 단군으로 등극하시며 농사법과 관개방법을 개량하시어 수확을 배가시켰으며 생산량의 20분의 1을 내는 입일세(卄一稅)세법을 정하시어 백성들의 배부름을 더하게 하셨다.

, 입일세가 이때 만들어졌군요.”

강 씨가 뜬금없이 감탄하듯 말했다.

십일세는 들어봐도 입일세는 처음 듣네만…….”

, 맹자에 중국에서는 상업의 성인이라 칭송받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백규(白圭)가 맹자에게 입일세를 하겠다며 맹자의 의견을 물으니 맹자는 그 제도는 맥()의 도라고 대답했는데 그 맥이 바로 단군조선을 뜻한 것이었군요.”

그렇구나, 그 송나라는 입일세를 하였는가?”

시행하지 못한 걸로 압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맥에는 생산량이 많아 그렇게 할 수 있으나 송은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칫 나라가 궁핍해질 수 있다는 이유이지요.”

허허~ 20분의 1의 세금으로 나라가 운영되었다니 진정 태평성대일세~”

재위 7년에는 태양의 신으로 받드는 삼족오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제단이 있는 동산()에 날아들어 큰 나래를 펴고서 신단(神壇)을 감싸주듯 하여 뭇 백성들은 천손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등극할 때 이미 연로하셨던 천자께서는 재위 8년에 승천하시고 태자 아술께서 즉위하시니 9세 단군 아술(阿述)천자이시다. (10부에서 계속)

 

 

“~집 한 채 짓는 것도 자연을 파손하지 않고 지을 수 없으며 내()를 쉽게 건너기 위해 놓는 징검다리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발전사는 자연의 파괴 역사인 것입니다.~”